<24>패러다임 파괴

2016. 2. 28. 13:1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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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패러다임 파괴

- 모든 학문 스승의 틀 파괴 새경지 전개 -
- ‘불성’있기에 인간의 가능성도 무한 -

이 글은 초등학교, 중, 고 그리고 대학, 대학원까지 수학을 공부해도 수학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가 라는 물음에 대한 불교적인 답이다.

선(禪)에는 무서운 말들이 곧잘 등장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부모를 만나면 조부모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임제록>. 이 내용은 물론 실제로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부모, 조부모, 부처의 가르침까지도 부정하고 스스로의 경지를 세우라는 적극적인 뜻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스승과 부모, 그리고 사회의 규범 속에서 성장해 간다. 갓난 아이가 늑대 사회에서 살면 늑대처럼 행동한다는 실례도 있다. 갓난아이는 아무런 정신적 오염이 없이 백지와도 같은 상태로 태어난다. 그러나 날마다 주위로부터 겹겹이 인연의 파도가 몰아친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도 부모, 학교, 사회 등으로부터 익혔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국어를 하게 된다. ‘언어와 사고’ 또는 ‘언어는 사상의 화석’이라는 언어학상의 경구도 있을 정도다. 그것은 이미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조상,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사유하고 있음을 말한다. 나는 이미 내 자신의 것이 아닌 남들이 형성해 놓은 가치관에 의해 좌우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봉건 시대의 가치관은 이미 존재 이유를 잃었다. 무의미해진 공산주의 가치관도 있다. 한 시대가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치관들이 많다. 지금 나를 에워싸고 있는 가치관은 나의 자유로운 사유, 절대 경지로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절대적 경지를 목표로 하는 선(禪)의 세계에서는 모든 선입견,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맑은 눈으로 자연의 섭리, 동식물 등 모든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20세기 최대의 과학사(수학사)학의 업적으로 T.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있다. 수학에서는 기존의 틀에서 아무리 문제를 잘 풀어도 천재라는 말은 들을 수 없다. 그 보다는 기존의 틀 속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틀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일단 누군가 천재가 틀을 정해 놓으면 그 후계자들은 모두가 그 틀 속에서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가령 원시의 미개인 사회에서 처음으로 수학자가 나와
2+2=4, 2+2+2=6, 2+2+2+2=8, ……
이라는 식으로 덧셈 법칙을 발견했고, 그후 모두가 그런 수학을 배웠다. 그러나
2+2+2+……+2
를 차례로 더해갈 때 일일이 더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에 새로운 천재가 나와 구구단을 발견한 것이다.

2×2, 2×2, ……,2×n
이런 식으로 곱셈을 알게 되면 상당한 계산 능력이 향상된다. 수학사는 모두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은 지동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쿤은 이와 같이 과거의 이론에서 벗어나는 일을 패러다임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곱셈 공식을 발견한 사람은 덧셈 공식을 만든 스승의 생각을 파괴하고 수학의 세계를 한 차원 올려 새로운 경지에 도달시킨 것이다. 즉 스승을 죽인 것이다. 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스승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경지를 전개할 때 일가를 이룬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남의 지식을 주어 모아도 자신의 세계에 이르지 못함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어떤 이론도 절대가 아님을 의미하고 있다. 불자에게 부처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러나 그것마저 죽이는, 곧 부처의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용기를 지녀야 함을 강조한다. 이 사실은 곧 인간의 무한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각(大覺)을 얻는 일이다. 그 가능성은 인간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처를 죽일 수 있고 어떤 천재가 수립한 대이론(패러다임)도 파괴해 갈 수 있다. 곧 수학(과학)도 무한의 발전이 가능해진다.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이 현실 사회가 극락 세계가 될 수 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한다. 그 믿음을 갖는 일이 곧 온누리에 자비의 빛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수학도 발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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