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無와 0의 사이

2016. 3. 6. 16:10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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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無와 0의 사이

- ‘0’은 數의 근원 …“없는 것이 존재한다”-
- ‘유마의 침묵’은 문답초월한 ‘無’와 상통 -

“철학적인 냄새가 짙은 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수의 기능만을 다루었던 수학자들도 일단 이 물음에 봉착하면 당혹해 할 수밖에 없었고, 예로부터 수학자와 철학자는 이 물음에 온갖 입장에서 답을 제시해 왔다.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존재 양식이라고 믿는 피타고라스의 '모든 것은 수'라는 것이 있다. 그는 수를 염주처럼 '○ ○ ○ … ○'와 같이 직선 상에 배열된 열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수열을 결정한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B.러셀은 “인간이 두 개의 들과 두 마리의 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1대1 관계가 성립되고 2를 추상해 낼 때 비로소 문명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극적인 표현을 했다. 이 같이 수를 인식하게 되자 수들 가운데 1, 2, 3 …과 같은 물건의 개수를 나타내는 수가 맨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없는 것을 나타내는 0은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수는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대상이 있을 때에 한해서였고 ‘없는 것이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도달하기까지는 더 많은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했다. 수학사에서 처음으로 수에 0을 편입시킨 민족은 ‘무’의 존재를 적극 내세운 불교 철학을 가진 인도였다. 일단 영을 수 세계에 받아들이고 보니 수학자들은 모든 수는 0으로부터 하나의 법칙(연기의 理)에 따라 차례로 나타나게 됨을 알게 되었고 수의 근원이 0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6세기초 중국 남조 양(梁)의 무제는 독실한 불자로 알려진 부대사를 궁(宮)으로 불러 “수많은 불교 경전이 있는데, 도대체 그것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부대사는 아무말도 하지 앓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답답해진 무제는 “빨리 말씀을 하시오”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때 무제를 가까이 모시던 보지화상이 방에 들어와 “황제시여! 대사의 설법은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부대사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無)’이며 말이 아닌 온 몸으로 최고의 답을 제시한 것이다. 

 

      사막의 지혜

      강이 있었다
      그 강은 머나먼 산에서 시작해
      마을과 들판을 지나 마침내 사막에 이르렀다

      강은 곧 알게 되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 때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사막을 건널 수 있듯이 강물도 건널 수 있다'

      강은 고개를 저었다 사막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강물이 흔적도 없이 모래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바람은 공중을 날 수 있기에
      문제없이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것이라고

      사막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 바람에게 너 자신을 맡겨라
      너를 증발시켜 바람에 실어라'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강은
      차마 자신의 존재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바람의 팔에 안겨 실려 가던 일이...

      그리하여 강은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의 다정한 팔에 안겼다
      바람은 가볍게 수증기를 안고 날아올라
      수백 리 떨어진 건너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살며시 대지에 비를 떨구었다

      그래서 강이 여행하는 법은
      사막 위에 적혀 있다는 말이 전해지게 되었다

      -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우화시 -
       


   

오온도 본래 공한 것이다 / 승조
                                          

 

지수화풍 으로 된 우리의 몸은 주인이 없고
색·수·상·행·식의 오온도 본래 공한 것이다.
머리를 들어 칼날 앞에 내미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구나.

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刃  猶如斬春風
사대원무주  오온본래공  장두임백인  유여참춘풍 

 

 

 

 

 

莫與心爲伴     마음과 짝하지 마시게

無心心自安     생각을 버리면 절로 편안한데

若將心作伴     그럼에도 마음과 짝한다면

動卽被心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

 

    -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惠諶)의 선시(禪詩)

 

 

 

마음과 짝하지 않는 無心道人 . .
중생은 마음(생각)을 따르고

부처는 경계를 따른다.
생각이란 허망한 것이라

그 생각에 스스로 속는 것이다




Tol en Tol - Rancho Deluxe (멋진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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