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자기화

2016. 4. 9. 22:09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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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자기화

-“물가의 말에게 억지로 물먹일 수 없다”-
- 문제의식 가져야 암기지식 자기화 가능 -

<임제록>의 마지막장 행록(行錄)에는 임제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가 대오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는 위대한 스승과의 만남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임제화상(和尙)은 처음 황벽의 제자였고 열심히 수행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수좌(首座)가 “너는 여기에 와서 3년이 되었다. 아직 황벽화상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불법의 근본의(根本義)에 대해 직접 황벽의 가르침을 받아 보라”고 했다. 젊은 임제는 그 길로 황벽화상을 찾아 그것을 물었다. 그러나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벽은 몽둥이로 임제를 쳤다.

기가 죽어 돌아온 임제를 보고 수좌가 물었다.

“가르침을 제대로 받았는가?”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몽둥이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수좌는 다시 한 번 가서 가르침을 청해 보라고 했다. 임제는 다시 황벽을 찾아 뵙고 길을 물었더니 다시 몽둥이로 맞았다. 이런 식으로 세 번 가서 세 번 맞은 것이다. 드디어 임제는 수좌에게 “세 번이나 가서 세 번을 맞았는데 아직도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인연이 닫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딴 곳으로 가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좌는 “그래, 할 수 없지. 그러나 이곳을 떠나기 전에 황벽화상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라”고 말했다.

임제는 황벽화상을 찾아가 떠나는 인사말을 했다. 그것을 들은 황벽화상은 “다른 곳을 찾지 말고 대우(大愚) 선사를 찾아가라“고 일렀다. 임제는 황벽의 말대로 대우를 찾아 나섰다. 대우는 찾아온 임제에 대해 물었다.

“어디서 온 것이냐?”
“황벽화상으로부터 왔습니다”
“황벽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그에게 세 번 불교의 근본의를 묻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습니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대우는 “황벽은 그토록 노파와 같은 마음으로 너를 가르치려 했는데(老婆心切) 굳이 나에게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순간 임제는 대오를 얻고 “황벽의 가르침은 명백하였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대우는 임제의 멱살을 잡고 “무어라고. 이 못난 애송이가 방금 무엇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우는 소리를 한 놈이 이제는 황벽의 가르침이 명백하다고? 무엇이 명백한지 말해 봐!”라고 소리쳤다. 임제는 대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 치며 대우를 밀쳤다. “당신의 스승이 황벽이 아닌가! 내가 알 바는 아니다”임제는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고 자신도 확고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가 황벽을 찾아갈 때만 해도 구한 것은 일반적인 답이었다. 그 자신의 문제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확고한 자신의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황벽은 그에게 몽둥이질을 한 것이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물을 마시는 일만큼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유클리드는 그 이전에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기하학적인 지식을 집대성하여 완벽한 논리체계로 엮었던 희랍 최고의 학자였다. 일반적으로 그가 엮은 논증기하학을 도형의 학문으로 여겼으나 기하학은 오히려 모든 학문의 기초이며 특히 왕에게는 필수의 교양이며 제왕학(帝王學)의 첫째 과목으로 여기고 있었다.

유클리드는 왕자의 가정교사 즉 사부(師父)였다. 가정교사치고는 당대 최고의 수준의 사람이다. 그러나 왕자는 그것이 어려워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왕자는 견디다 못해 유클리드에게 “선생님, 너무 어려워요. 좀 쉽게 배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왕자에게도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가 왕자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황벽화상이 임제에게 한 것처럼 몽둥이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남이 제시해 놓은 수학의 내용은 누구나 건전한 이성과 기초 지식만 있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낱 암기에 불과하며 자신의 경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기존의 수학 지식을 얻어도 그것을 자기화하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논리를 초월하는 불교와 논리를 끝까지 고수하는 수학은 최고의 인식 수준에 도달하는 길은 다르더라도 자기화 과정에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만은 공통이다.

  

다 지나가는 것 / 이해인  

차창 밖으로 산과 하늘이
언덕과 길들이 지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지나가는 것임을

길다른 기차는
연기를 뿜어대며 길게 말하지요

행복과사랑
근심과 걱정
미움과 분노

다 지나가는 것이니
마음을 비우라고
큰 소리로 기적을 울립니다

 


자성 청정 1.(自性淸淨) .

 

비유 하자면 금으로 반지를 만들지만 반지를 떠나서 금.이 없고.

금을 떠나서 반지가 없으니 금 이 곧 반지요 반지 그대로가 곧 금 이다.

 어떤 물건을 만들지간에 금은 금의 자성을 잃어 버리지 않은 다는 말이다

작용하는 상태는 달라도 그 바탕을 이루는 본성인 금.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불변과 수연의 관계는 이와 같다.

 

자성청정 2. (自性淸淨)

 

마치 밝은 거울에 더러움과 깨끗함이 나타 나듯이 비록 더러움과 깨끗함이

나타나 지만 항상 거울은 거울의 밝고 깨끗함을 잃지 않은다.

그래서 거울의 밝고 깨끗한 본 바탕을 잃지 안으므로

바야흐로 능히 더러움과 깨끗함을 항상 나타내 보인다.

 

더러움과 깨끗함을 드러냄이 분명하니 

그런 까닭에 두가지 뜻이 오직 하나의 성품 이다.

자성청정 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더러움과 깨끗함을 이룰 뿐이다.

 

또한 이에 더러움과 깨끗함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자성 청정을 드러낼 뿐이다.

또한 이에 자성청정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더러움과 깨끗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르므로 두가지 뜻이 전부 서로 어우러저서 하나의 성품이며 둘이 아니니

어찌 서로 다르다 하리오, 

곧 거울에 사물이 비칠수 있는 까닭은 거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 성철스님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가장 가까운 사람

부모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니며
배우자와 자식도 또한 그렇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와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나인 줄 아는 그 사람,
나를 나라고 부르는 그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그 사람이어서
다시 만날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특별한 느낌으로도 느낄 수 없고
생각을 일으켜 헤아려 알 수도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기에 새삼스레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하자니 없다가 벌어지는 이 자리는 엄연히 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으면서도 늘 새롭고
늘 새롭지만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그저 말을 잊고 생각을 쉰 채로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할 뿐입니다.

미소.


- 몽지 심성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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