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중달 도깨비방망이 |…… 강병균 교수

2016. 5. 8. 22: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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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중달 도깨비방망이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민을 상담해주는 인생멘토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혼자 힘으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조훈현>


사마의는 호가 중달인데, 삼국지 영웅 조조의 군사(軍師)로서 천수를 누리고 죽은 불세출의 전략가이자 처세의 달인이다. 그의 손자 사마염은 조조의 증손자인 위나라 혜제 조방으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진나라를 세우더니, 천하의 영웅 유비 손권 조조도 이루지 못한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자기계발서

중국 유명저술가 조옥평의 저서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에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A) 사마중달의 잠언: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하지 못하면 이후에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허다한 말이 있어도 제때 하지 못하면 이후 다시 말할 기회는 사라진다.


하지만 사마중달의 천적인 제갈공명이 했음직한 말도 있다.


 (B) 재갈공맹의 잠언: 하려고 마음먹은 말은, 설사 마음먹었을 때 하지 못하더라도, 기다리면 또 기회가 생긴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마라.


어떤 일은 당장 하지 못해도 다음에 기회가 또 있고, 어떤 일은 당장 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

(예를 들어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생일날이 지나면 하기 힘들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정말 힘들다. 일 년이 지나면 불가능하다. "당신의 작년생일을 축하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심한 경우는 그사이에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축하할 사람도 축하받을 사람도. 하지만 미장원을 다녀온 그녀에게 "당신 아름답다"는 말은 오늘 당장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중에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A, B라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 상황이 A인지 B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항상 A이거나 또는 항상 B인 것은 아니다. 흔히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하는 것이 자기계발서의 허점이다.


이 자기계발서 책들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구를 마치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참인 것처럼 과장하고 단정적으로 얘기해서 상황을 단순화함으로써, 예를 들어 항상 A가 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A냐 B냐 결정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없애, 단순한 해결책을 원하는, 즉 모든 상황에 통하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해결책을 원하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러므로,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다양한 경구는, 세상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개별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을 하는 걸 도와주는 보조수단일 뿐이다.

하나뿐인 무기, 기도

목수나 궁장(활 만드는 장인)은 무수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연장으로 쓰는 칼도 수십 종류나 된다. 장인은 수많은 도구를 가지고 상황에 맞는 도구를 골라 사용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통용되는 만능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톱을 써야 할 곳에 칼을 쓸 수 없으며, 칼을 써야 할 곳에 톱을 쓸 수는 없다. 대패를 써야 할 곳에는 톱과 칼이 무용지물이며, 송곳을 써야 하는 곳에는 대패도 톱도 칼도 모두 무용지물이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다양한 연장이 필요하게 된다. 다양한 새로운 연장을 개발하고 그 연장들을 능숙하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라 한다. 종교는 삶의 복잡한 면을 무시하고 '신에 대한 믿음'이나 '마음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모든 걸 때려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대패 하나로 모든 목공일을 하려고 덤벼드는 얼치기 목수나 다름없는, 무모하고 무식한 일확천금주의이다.


원조 자기계발서인, 수천 년 된, 종교경전에는 단 한 줄 쓰여 있다. "신을 믿어라 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마음이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참나를 찾아라." “신이나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겨라.”


그런데 결론이 해괴하다. “이런 귀한 가르침을 전하는 내 말은 모두 믿어라.”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라.“ 


신도가 다급히 전화했다. "스님, 큰일 났읍니다. 어찌 해야 하나요?"
"불전에 노란색 돈을 수북이 쌓아놓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하며 절하세요."


신도가 절을 찾아 열심히 신심 깊게 기도하는 사이에 집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 신도는 집에 불이나자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화를 한 것인데, 스님은 무기가 달랑 기도 하나뿐인지라,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기도를 권한 것이다. 119 신고는 고사하고 소화기라도 찾아 사용했으면 하다못해 귀중품 몇 개는 구했을 것을, 기도만 하다가 모두 잃고 말았다.

너무 과장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기독교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수혈을 거부하다가 죽음에 이르곤 한다. 정통교인들은 중병에 걸린 사람을 기도원에 가두고 기도만 시키다가 죽게 만들기도 한다. 기도발이 안 먹히면 (자기들이 보기에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몽둥이질을 해대기도 하는데, 몸이 없는 귀신이 어떻게 몽둥이질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다 죽는 것은 사람이지 귀신이 아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이 정말 많다.


기도 하나에만 의지하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일이다.  


감기에 걸려도, 폐렴에 걸려도, 결핵에 결려도, 간염에 걸려도, 백내장에 걸려도, 맹장염에 걸려도, 모두 기도 하나면 된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중병에 걸리면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결국 죽을 목숨, 기도에 매달리는 게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었겠지만, 요즘은 의학이 발달했으므로 병원을 찾는 게 급선무다. 아무리 용한 무당도, 도가 높은 도인스님도, 치병능력으로 유명한 목사도, 자신들이 병에 걸리면 일단 급히 병원을 찾을 것이다. (신도들이 집으로 몰려와, 성직자에게 배운 대로, 중보기도와 치유기도를 시작하면, 성직자는 ‘자기를 즉시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이 뭐하는 짓이냐’고 지옥불같이 또 아수라같이 화를 낼 것이다.) 병에 걸린 신도들은 성직자에게 매달리지만, 정작 병에 걸린 성직자는 병원에 매달린다.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달라이라마의 신통력


달라이라마의 솔직한 고백이 있다. 그가 병에 걸려 입원을 했을 때 정작 위안이 된 것은, 쾌유를 기원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심력(心力)을 자랑하는) 동료 고승들의 기도가 아니라, 병원의 첨단 의료시설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병에 걸리면 절대 달라이라마에게 기도하면 안 된다. 그가 몹시 화를 낼 것이다.
(달라이라마의 위대성은, 자신에게 6가지의 신통력이 있다고 믿는 대중에게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여전히 ‘그가 신통력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신통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그가 열심히 신경과학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이유는 ‘정말 몰라서 배우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그를 ‘관세음보살의 화신(환생)’이라고 철석(鐵石)같이 믿는 대중은 마치 그가 과학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것처럼 오해한다. 좋은 쪽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도 대단한 신통력이다.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용하고 유명하고 고명하고 신심 깊고 도가 높은 목사 신부 스님 철학관장 점쟁이들은 병원에서, 몸과 마음에 여러 개의 첨단장비를 연결한 채, 생을 마감한다. 이름이 높을수록 돈이 많고, 돈이 많을수록 더 큰 병원에서 임종한다. 그에 비해 이름 없는 가난한 성직자들은 그냥 집에서 임종한다. 돈이 없는 자들은 올 때도 집으로 오고 갈 때도 집에서 간다. 차갑고 허름한 산속 토굴에서 때 묻은 요위에 누워 홀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노승을, 아미타불이 권속을 대동하고 오색구름을 타고 와 영접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쓸쓸한 죽음이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길에서 얻은 무상정등각과 무소구행

무소유의 부처님은 올 때도 길로 오셨고 갈 때도 길에서 가셨지만, 최고의 깨달음(無上正等覺)으로 천지를 밝히셨다. 세상의 평화와 중생의 행복 이외에는 달리 원하는 바도 없으셨다(무소구행 無所求行).

기도, 막다른 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기도란 아무 방법이 없을 때 하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기도란 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수가 있는데 기도만 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알토란같은 돈을 안 갚고 도망간 악질 빚쟁이를 보는 순간 번개처럼 좇아가지, "저놈 다리가 부러지라"고 기도부터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무척 신심 깊은 사람이 겪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도망간 악질 빚쟁이를 본다. 깜짝 놀란다. 가슴을 추스르고 신께 감사기도부터 한다. 연이어 반드시 잡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그리고 그 놈이 떼어먹은 돈을 아직 쓰지 않아, 갚을 돈이 남아있기를 간절히 빈다. 드디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뜬다. 하지만 빚쟁이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한참이다. 그러면 신에게, 그놈을 한 번 보게 해준 것을 감사하면서, 다시 한 번 보게 해달라고 두 번째 기도를 시작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별수'가 자꾸 생겨나서, 신과 (기복의 대상으로서의) 불보살은 끝없이 문명의 외곽으로 쫓겨난다. 사실, 기도의 기능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소원의 무게로 압사당하기 일보직전의 마음에 거짓 희망으로 무게를 덜어주는 것이다.


백일기도 천일기도가 끝날 즈음이면, 무상의 법칙(세속에서는 이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른다)에 따라 소원에 대한 욕망도 강도가 약해져서 설사 기도가 안 이루어져도 큰 타격이 없다. 여전히 소원에 대한 욕망이 충분히 강하다면, 다시 백일·천일기도에 들어가면 된다. 소원이 유발하는 심적 부담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작아질 때까지. 이게 기도의 진정한 기능이다.

만병능치단

‘만병능치단(萬病能治丹)'이라는 약을 발명한 의사가 있었다. 용하다고 소문이 나 전국에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증상이 심한 환자일수록 더 시간을 들여 진맥하고 더 정성을 들여 환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래서 인자하고 자상한 의사라고 명성이 더욱 더 높아졌지만, 다 쇼였다. 병에 관계없이 모두 만병능치단을 처방했기 때문이다.

신이나 기도는 성직자들이 처방하는 만병능치단이다.

과학발전은 기도를 통해 오지 않는다

필자는, 과학자나 수학자 중에 유명기도처를 찾아가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게 해서 과학문제나 수학문제를 풀었다는 사람도 없다. 인류역사상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기도에 매달릴까? 수시간 수일 수주 수월 수년을, 심지어 일생을, 왜 그리할까? 도망가던 꿩이, 엉덩이는 드러낸 채, 풀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신이나 불보살은, 다른 소원은 다 들어주면서도, 왜 과학문제나 수학문제에 대한 풀이는 하사하지 않는 것일까?


(불가사의하게도, 기후예측용 인공위성발명을 통한 자연재해 방지와, 농업혁명을 통한 기아해결과, 의학발전을 통한 질병치료와, 기계문명을 통한 부의 증진과 여가활동의 여유와, 사유재산증가를 통한 민주주의 확립 등 세상의 진보와 행복은 기도가 아닌 과학을 통해서 온다.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역사와 우주의 탄생과 소멸 역시 진화론과 지질학과 천문학을 통해서 주어진다. 45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인간과 개 소 말 돼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35억 년 전에 단세포생물로 출발하여 지금의 100조 개 다세포동물인 인간으로 포유동물로 진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6,500만 년 전에는 수미산도 존재하지 않았다. 6,500만 년 전 무렵에 지구의 지질학적인 대(大)변이를 통해서 히말라야 산맥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과학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불교의 사티 수행이란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선입관과 치우침이 없으면, 작게는 세상을 사는 지혜가 생겨나고 자라고, 크게는 "유형무형의 제 현상은 시간과 공간과 환경과 무수한 몸과 마음이 얽히고설키어 만들어 낸다"는 연기법과 "연기법의 배후에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주체가 없다"는 무아(無我)를 깨닫게 된다.

불교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의지할 대상도 의지하는 주체도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이 깨달음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만능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이 깨달음에 기초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탐욕과 미움을 떠나, 열심히 몸과 마음과 자연계의 이치를 탐구함으로써, 즉 의사로서 농부로서 기술자로서 과학자로서 보다 나은 의술과 농술(農術)과 기술을 개발하고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을 더 살기 좋고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고 중생을 미신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

젊은 불자들이여 깨어나라


특히 젊은 불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고통 속에 사는 무명중생들로부터 "불제자가 사는 곳은, 특히 대한민국은, 참으로 사람 살 만한 곳이로구나!" 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다.

무상의 법칙에 따라 세상은 끝없이 변하므로, 그에 대한 대응책도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깨달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중간역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기에, 깨달음은 세상일을 올바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난 목적지는 아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무려 45년이나 더 사셨다. 정말 열심히 사셨다. 돌아가시는 당일에도 식중독으로 인한 극심한 복통 속에서도 설법을 하셨다!)


내 나이 스물아홉에
비로소 집을 나와 착한 도 닦고
정각을 이루어 지금에 이르러
오십여 년이 이미 지났네.

선정과 지혜를 갖추고
언제나 깨끗한 계율을 닦았나니
조금이라도 이 도를 벗어나면
거기에는 어떠한 사문도 없노라.


깨달음은 종착역이 아니라 중간역일 뿐이다. 깨달음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부끄럼과 게으름
지난날의 부끄럼은 부끄럼이 아니고 
지난날의 게으름은 게으름이 아니다.
진짜 부끄럼은 지금의 부끄럼이고 
진짜 게으름은 지금의 게으름이다
지금 내가 게으른 줄 알면서 게으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럼이고
지금 내가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빨리 고치지
못하는 것이 게으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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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사람 
보석 하나 얻었다고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보석 하나 잃었다고 
평생 불행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잘 만나 
한평생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고
사람 하나 잘못 만나 
한평생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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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마음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꿀 수 있다.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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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별나게 머리가 똑똑하지 않다. 
특별한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겼을 뿐이다. 
-빌 게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