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진리와 분별|********@불교와수학@

2016. 5. 28. 20:06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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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진리와 분별

-불교 … 불법과 세속은 ‘俗佛一如’-
-수학 … 유한의 논리 무한세계 연장 -

강단에 앉아 있는 임제에게 마곡이 물었다.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어느 것이 정안(正眼), 즉 정면을 똑바로 보고 있는가?’ 천 개의 눈과 손을 가진 관세음보살은 스스로 다즉일 일즉다(多卽一 一卽多)를 구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고사리와도 같은 내용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사리의 어느 하나를 보아도 전체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또 그 부분의 한 개의 잎을 떼어 보아도 전체와 같은 구조이다.

수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자기닮음(Fractal)이라고 한다.

‘관음보살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디가 정안이냐?’고 묻는 마곡의 질문에 답이 있을 수는 없다. 마곡도 충분히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으로 구현되는 불법의 진수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제는 ‘대비천수안(大悲天手眼)의 어느 것이 정안이냐’고 같은 물음을 마곡에게 반복해 던지면서 빨리 답하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마곡은 강단 위의 임제를 밀어내고 자신이 상좌에 앉았다. 임제는 마곡에게 다가서며 ‘안녕하신가’를 물었다. 마곡이 당황하자 임제는 마곡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 마곡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갔고 임제도 자리에서 내려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천수천안 관음의 천 개의 눈 가운데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냐? 는 물음이며, 둘째는 임제와 마곡이 차례로 두 번이나 자리바꿈을 했다는 의미이다. 강단에 있었던 사람을 끌어내리고, 아래 있던 사람이 강단에 오르고, 또 한 번 그 자리에 있는 자를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이 오른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빨리 교체하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수많은 눈과 손으로 중생을 대하지만 천 개의 눈 가운데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 하나다. 임제는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라 해서 있는 자리 어디에서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계를 대하며 그 하나하나의 눈 역시 관음보살을 나타내며 그것을 통해 모든 중생에게 대자대비를 베풀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어떤 입장에 선다해도 그것은 이미 관음보살의 일부분만을 선택한 결과가 된다. 그것은 곧 전체(관음보살)를 그 부분으로 파악하는 일이 된다. 다즉일 일즉다(多卽一 一卽多)의 철학을 전제로 해도 하나를 택할 때는 一卽多임을 의식할 수가 없다. 전체를 말하지 않는다면 일(一)은 어디까지나 일(一)이다.

‘대비천수안 어디에 正眼(진리)이 있는가?’의 물음은 이미 전체와 일(一)을 나누어 생각하는 분별의 세계이다. 정안의 불법을 떠난 분별(俗)의 세계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때 임제 자신도 분별의 세계에 들어가 그에 관해 ‘너 자신이 대답하라’는 것이다.

속(俗)의 물음에 대한 속(俗)의 대답이다.

강단 위에서는 불법의 입장이며 그 아래서는 분별(俗)의 입장이다. 이때 마곡은 불법의 입장을 의식하자 강단 아래서는 대답할 수 없어 불가불 강단 위에 있는 임제화상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나 임제는 앞서 분별의 입장에서 당한 질문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빨리 답하라’고 재촉한다.

분별의 말로써 불법의 진리를 말할 수 없고 불가불 俗(분별)의 세계에 내려가야 한다. 그리하여 ‘안녕하신가’를 강단 위에 앉은 마곡에게 던진다. 이들이 되풀이하여 강단을 오르고 내리고 한 것은 불법과 분별의 세계를 구별한다. 그리하여 마곡은 그 자리를 떠나고 임제도 자리에서 내려온다. 불교적 진리와 분별이 항상 번갈아 갈 수 있는 속불일여(俗佛一如)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수학의 무한론에서는 유한의 논리를 무한세계로 연장하여 대소의 구별, 무한 세계의 계산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무한의 유한화이며 유한과 무한이 공통의 논리를 전개한다. 위 자리에 있는 무한과 아래 세계의 유한 사이에 논리의 다리를 놓은 것이다. 임제와 마곡이 번갈아 佛과 俗의 세계를 넘나들이 하고, 그것이 하나임을 ‘안녕하신가?’라고 속의 물음으로 표시했다.

불법에서는 불법(正眼)과 분별 세계가 범속(凡俗)한 곳에 있음을 보였다고 하면 수학에서는 유한과 무한을 한눈으로 보는 지혜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