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비었다는 생각

2016. 8. 13. 22: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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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비었다는 생각과 깨달음

<유마경>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질문을 받은 유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찍 죽은 자가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보듯이,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탐내고· 계율을 범하고·

성내고 해를 끼치고자 하는 등의 마음을 보듯이,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 온갖 색깔을 보듯이,
허공 속에 새가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음을 보듯이,
석녀(石女)의 아이가 하는 업 짓는 행동을 보듯이,
꿈에서 깬 뒤에 꿈속에서 본 것을 보듯이,
일어나지도 않은 불이 태우고 있는 것을 보듯이,
이와 같이 보살은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바르게 관찰해야만 합니다."

죽은 자가 욕망의 즐거움을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분별망상, 분별망상에 사로잡힘으로써 일으키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은

깨달음과 함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이 색깔을 알 수 없으며,

허공을 날아간 새에게는 자취가 없고,

돌로 된 여인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데,

그녀의 아이가 노는 일은 더더욱 볼 수 없습니다.
꿈에서 깼을 때 꿈에서 본 것은 없는 것이며,

일어나지도 않은 불은 그 어느 것도 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모든 현상을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진실로 실체가 없으니

여기에 나도 없고, 법도 없고, 세상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없다는 것이지,

모든 것을 치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 감정, 사물, 감각, 여러 가지 분별된 모습들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온갖 모습, 작용, 빛깔 그대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비었다는 견해는 진실로 빈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비었다는 것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과 이렇게 깨닫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진실로 깨달아 모든 것이 비었음을 몸소 체득했을 때는,

모든 것이 비었다는 것조차 군더더기의 말이 됩니다.

어떠한 고정된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냥 삶이 있는 그대로 비었습니다.

온갖 경험이 예전과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그 모든 것에 그것이랄 게 없기 때문에

삶의 문제가 힘을 잃어버립니다.

표면적으로 문제가 그대로 있을 수도 있고, 문제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아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 현상에 상관없이 그대로인 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공부는 아는 공부가 결코 아닙니다.

만약 보고 들은 지식을 종합하여 '모든 법이 공이어서 나도 없고 중생도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공부로 삼는다면, 아직 마음공부의 기본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했음을 깨달으라는 말이지

그런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법이 공했으면 공하다는 것까지 공한 것입니다.

어떠한 견해도 비었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모든 말들은 결국에는 이별해야 할 말들입니다.

서울로 가는데 잠시 이용하는 KTX입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KTX를 타고 다니지 않습니다.

사실 무얼 타고 다니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타고 다니지만 아무것도 타고 다니는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모든 말들은 우리 본성을 가리고 있는 모든 상들에 대한

분별과 집착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텅 빈 허공임을 깨닫고 나면 온갖 말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때에 따라 내가 있다 하든 없다 하든, 법이 비었다 하든 가득 찼다 하든

스스로에게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만법이 공임을 이해하고 이것을 깨닫는 것이 마음공부임을 알았다면,

스스로 어떤 견해도 가지고 있거나 지키지 않을 일입니다.

어떠한 관념도 가지고 있거나 고수하거나 그런 관념에 맞는 상태를

추구하지 않을 때 그제야 모든 것이 진실로 비었지만 빈 것만도 아니고,

깨어있지만 뭐가 있는 것도 아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 릴라님(몽지와릴라 밴드에서)



시간관리를 잘해야 성공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다

 

 

법우님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무더위도 한 풀 꺽여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 “시간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동서고금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교훈입니다.

이 말은 시간이 금과 같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간은 금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돈이나 토지, 건물 같은 것들은 일시적으로 잃었다 할지라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엄청난 돈을 모을지라도 절대로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 스님이 최근 상담한 사람 중에 남자 암환자가 있습니다.

그를 만났는데 몹시 야윈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스님~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그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이요.

스님~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하며

딱하기 그지없는 눈초리로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애처로운 절규에 스님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절규가 바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또 시간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짤막한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이 그 때, 그때가 지금”이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그 때란 “중요한 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이란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이란 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시간은 신속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따라서 “지금”이 일을 할 때인 것입니다.

주저한다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우유부단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과의 법칙과 인연법을 말씀하시면서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에 내가 지어온 업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요,

미래의 내 모습은 현재에 내가 지어가는 업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미래에 행복을 원한다면, 현재에 행복하게 사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지금 바로 주저하지 마시고 행복을 위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꾸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연으로 반드시 행복의 열매가 맺게 될 것입니다.

 

 

◇ 아함경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베살리의 원숭이 연못 옆 중각 강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연못 주변을 산책하시던 부처님께서 문득 제자

아난다에게 이런 것을 물었다

 

“아난다야, 큰 바다에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이 거북이는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머리를 내놓았는데,

그때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면 잠시

거기에 목을 넣고 쉰다.

 

그러나 판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때 눈먼 거북이가 과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다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눈까지 먼 거북이가 백 년 만에 머리를 내밀 때 넓은 바다에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난다는 것은 확률 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했다.

 

“그래도 눈먼 거북이는 넓은 바다를 떠다니다 보면 서로 어긋나더라도

혹시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이 육도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저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나기 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저 중생들은 선(善)을 행하지 않고 서로서로 죽이거나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해쳐서 한량없는 악업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내가 가르친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고집멸도 苦集滅道)’를 부지런히 닦으라.

만약 아직 알지 못하였다면 불꽃같은 치열함으로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잡아함> 15권 406경 맹구경 (盲龜經)

 

◇ 이와 같이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한다면

불법(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것은 이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우리가 이생에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이며,

이 개운선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게 된 것은

더욱더

복 받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귀한 인연으로 태어난 것을 깊이 깨달으시고

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음을 닦는데 매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너도 살리고 나도 살리는 일인 것입니다.

미루지 말고 바로 이 순간 즉시 실행해 봅시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말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 줍니다.

화를 가급적 내지 맙시다.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내도록 합시다.

가족, 이웃, 직장에서 만나는 가까운 이에게

먼저 이를 실천해 봅시다.

 

이렇게 작은 일을 실천하는 가운데

좋은 행동의 습관을 쌓고

또 좋은 행동의 습관으로 청정한 마음을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잘 사용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위 환우 같이

“주어진 시간이 적다.”라는 절규를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