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읽는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

2016. 10. 22. 20:16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기독경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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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읽는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



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 10:22~30]


 





대부분의 사람들, 영적 구도자들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진리란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도가 바로


이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려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든 구도는 정확히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끝나게 됩니다.

원래 영적인 구도 행위와 수행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단과 방편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닌 미래의 언젠가 저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의 나가 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에 의지합니다.


판단과 분별에 의지해 모든 것을 재단하고 확인하고 증명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이원적인 속성, 상대적인 속성을 가진 생각으로는 절대적 확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강박증 환자처럼 끝없이 변하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느라 마음이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생각은 불안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끝없이 불안해합니다.

바로 이러할 때 깨달음, 신앙의 도약이 필요합니다.
(잠시 묵상)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십시오. 어떤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이것이 보려는 그것입니다. 보는 자가 보려는 대상입니다.


보는 자, 보려는 대상, 보는 일 전체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눈앞의 진실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원적 분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하는 순간 보는 자와 보려는 대상으로 분열됩니다.


그러면 보는 일과 보지 못하는 일이란 차별이 벌어집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진리와 나는 하나입니다. 깨달음과 나는 하나입니다.


왜, 어째서 하나인지 분별을 일으키는 순간 둘이 됩니다.


그 하나를 인식하고, 체험하고,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둘이 됩니다.


그러나 그 둘 역시 하나입니다. 진실로 하나라면 하나를 알 다른 하나가 없습니다.


그 순간 하나마저도 사라집니다. 그것이 깨달음, 신앙의 완성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없지만 있는 나가 참나입니다.
(잠시 묵상)

천신만고 끝에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 단 한 순간도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닫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였습니다.


 따라서 돌아왔지만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떠났지만 사실은 떠난 것도 아니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요, 은총의 신비, 구원의 신비입니다.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진실로 비범한 모든 것입니다.

아멘.
(침묵)




- 몽지 심성일님(몽지와릴라 밴드에서)


 


 ~차 한잔 해요~ 
하얀눈이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눈만 보고있다네
진한 헤즐럿 향기가 있는 커피한잔에 
각설탕 두개에..사랑한스푼으로  저었네
차가운 마음에 따뜻한 커피가 전해져
오는 향기가 분홍빛으로 물들여 놓았네
마음의 사람과 마시는 이 커피는
마음의 외로움을 녹여주는 각설탕이네 
사랑한잔~ 커피한잔~ 외로움한잔
마음의 향기를 마시고 커피향에 취하네..
~우리 커피한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