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카오스와 전체론|********@불교와수학@

2016. 10. 30. 18:18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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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카오스와 전체론

-공중에 돌을 던지면 포물선 그리나-
-살아있는 새 던지면 카오스선 그려-

근대과학의 방법론은 기본적인 요소들의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요소환원주의’의 입장이다. 모든 물질이 원자의 결합으로 유일적인 방법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전형이다. 뉴턴은 거대한 행성 궤도를 태양과 행성과의 힘의 관계로 환원하여 계산했다. 이때의 요소는 태양과 행성이다. 수학도 이 수법이 이용되었다.

정수론의 기본 요소는 자기 자신과 1 이외의 약수를 갖지 않는 소수이다. 가령2, 3, 5, 7, ……
과 같은 것이 소수이다. 한편 6의 약수는
1, 2, 3, 6
이며 소수가 아닌 합성수이다. 수학 가운데에서 특히 수의 성질을 다루는 정수론의 기본정리는 ‘모든 수는 소수의 곱으로(순서만 생각하지 않고) 유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인수분해의 원리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는 1, 2, 3, …… n과 같은 자연수를 말한다. 즉 6은 2와 3, 두 개의 소수의 곱으로 표시되며 다른 어떤 소수의 곱도 될 수 없다. 이 기본원리를 이용함으로써 수에 관한 여러 성질이 많이 규명되었다. 그러나 수학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가령 ‘1, 2, 3, ……’과 같은 자연수 전체를 합해서 만들어지는 수의 표현 방법은 무한히 많으며 요소환원주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전체에는 그 요소에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성질이 있으며 요소환원주의에 대립되는 전체론(全體論)이 요청되는 것이다.
불교에는 ‘一卽多 多卽一’의 철학이 있고 한편으로는 성철스님의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즉 있는 그대로, 전체를 분할하지 말고 보라)는 전체론적인 입장이 있다.

얼핏보면 과학과 불교는 모순된 체계처럼 보이며 불교는 때로는 신비주의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一卽多 多卽一’의 ‘一’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무한성이다. 무한을 전제로 하는 ‘一’이기에 ‘一’을 보는 일은 곧 전체를 보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산은 산, 물은 물’로 보는 것과도 같다.

‘一’과 ‘多’는 個(요소)와 전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소와 요소, 전체와 요소의 상관관계에서 저마다 요소, 전체의 성질이 정해진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시간, 공간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부처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기본사상은 ‘一卽多 多卽一’이다.

제석천(帝釋天)의 궁전에 걸려 있는 장식용의 망에는 각 망의 눈 하나하나에 한 개의 보석이 들어 있다. 그 보석에는 다른 망의 눈에 붙어 있는 모든 보석의 영상이 비치고 있다. 또한 이들 낱낱의 영상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영상도 담겨 있다. 그것이 또한 다른 보석에 비치고, 또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고 중중무진의 영상이 다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곧 ‘一卽多 多卽一’의 세계이다.

불교의 대상은 인간이며, 불교적 과학관은 인간학이며 인간의 무한성을 전제로 한다. 지금 돌을 던지면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것은 던질 때의 힘으로 지배되는 요소환원주의적인 사고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작은 새를 던지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카오스적인 곡선을 그린다. 새의 의지에는 무한의 선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한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대상에서 이들 각 요소가 다른 요소의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할 때는 전체의 움직임이 각 요소(부분)의 단순한 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각 요소간의 관계이며, 있는 현상을 해부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제한된 무기물들이다. 이와같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으며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명제가 진리로서 통한다.
이때 살아 숨쉬는 인간이 산과 물에 관련되면서 함께 정보와 가치를 나누는 것이다.
근대 과학의 요소환원주의는 주로 무기물을 다루는 물리학에서 출발했다면 카오스이론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에서 발생했다. 생물을 분석하는 일은 곧 생명의 죽음을 의미하는 해부임으로 요소환원주의로는 금방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삶은 늘 새롭다

여러분의 삶은
오늘의 이 순간, 이 조건에서는 한 번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과 늘 같이 살아도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상황을 접하는 겁니다. 

어제 밤에 같이 잔 남편과 오늘 아침에 본 남편은 다른 사람이에요.
직업이 교사라면
어제 만난 학생들과 오늘 본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이에요.  

현재에 깨어있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걱정에 싸여
매일 같은 사람과 살고
매일 같은 삶을 산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삶은 늘, 사람은 늘, 새롭습니다. 
이것만 명심하면 매일 같이 살아도 지겹지 않고
매일 반복된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어요.

※ 법륜스님 희망편지중에서 -

 

 


 

 

10월의 시 /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