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5. 18:2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
당신은 부처님 선시(禪詩)의 인불사상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도착하고 도착해도 출발한 그 자리더라.
[行行本處 至至發處]
‘가도 가도’라는 그 간다는 행(行)은 사람이 걸어가는 뜻과 함께 불교에서 수행(修行)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수행하고 또 수행하더라도 수행하기 이전의 본래의 그곳이다.”라는 뜻이다.
수행이란 사람으로 태어나서 좀 더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 성인들이 소개한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여 이런 저런 몸짓과 마음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간경도 하고 주문도 외고 절도 하고 하는 등등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지에 오르고 어떤 다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일이다.
그러나 의전지시구시인(依前祗是久時人)이라는 선가(禪家)의 말과 같이 다만 예전 그때의 그 사람일 뿐이다.
만약 별다른 사람이 있고 별다른 법이 있다면 그것은 삿된 마군의 견해[若別有人有法則 是邪魔外道見解]다.
그 어떤 수행을 하든 다만 본래의 그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별다른 사람은 되지도 않는다. 애초부터 별다른 사람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은 본래로 완전무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처라 하든 하나님이라 하든 중생이라 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대개의 수행하는 사람들은 별다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소영웅심리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설사 어떤 피나는 수행을 해서 어디에 이르렀다 손치더라도 처음 수행하기 전의 그곳이다. 지지발처(至至發處)다. 즉 사람으로서의 본래 그 자리다.
본래의 그 자리인 부처자리보다 높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님자리인 그 자리보다 높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렇게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다. 사람을 떠나서 다시 다른 경지를 기대하지 말라. 잘못하면 전도된 사람이 되고 미친 사람이 된다.
필자는 동진 출가하여 지금은 전설이 된 큰스님들을 많이 보아 왔다.
당대에 선지식 복은 내가 제일이 아닐까 싶다. 처음 범어사에서 60년대 초에 동산 스님, 지효 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 후 해인사에 가서 지월 스님, 일타 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으로 행각하면서 동화사에서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을 함께 모시고 살았다. 그리고 경봉 스님, 향곡 스님, 춘성 스님, 전강 스님, 관응 스님, 운허 스님, 탄허 스님, 성철 스님, 지선 스님, 범룡 스님, 서옹 스님, 서암 스님, 월산 스님, 벽안 스님, 월하 스님 등 많은 스님 밑에서 한 철 또는 두세 철씩 모시고 살았다.
그야말로 지금은 전설이 되고도 남는 기라성 같은 큰스님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으로 그들은 모두 변함없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처음도 사람이고, 중간도 사람이고, 나중도 사람이었다.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그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가셨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도착하고 도착해도 출발한 그 자리더라
[行行本處 至至發處].”
- 무비스님
■ 남편이 남기고 간 편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입니다.
신혼 때부터 남편은 밖으로만 돌았고
툭하면 온몸에 멍이 들도록 나를 때렸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자꾸 숟가락을 놓치고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정도가 심해져 진찰해 보니 ‘소뇌 위축증’으로 운동능력상실,
시력장애에 이어 끝내 사망에 이른다는 불치병이었습니다.
병수발을 하며 생계를 잇기 위해
방이 딸린 가게를 얻었습니다.
남편의 몸은 점점 굳어 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
갖고 싶은 물건을 사오라고 고집 부려 내 속을 태웠습니다.
그렇게 8년을 앓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큰애가 군대 가던 날은
남편이 더 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등록금이 없어 가게 된 군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건강할 때는 술만 먹고, 아파서는 약 값과 병원비에,
죽어서는 아플 때 진 빚 갚느라 아들 등록금도 못 내다니….
평생 짐만 주고 간 남편과 ‘영혼 이혼’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작은아이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집을 팔고 청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짐을 싸고 빠진 물건이 없나 살피다가 버리려고
모아 둔 책을 뒤적였습니다.
그 사이에 눈물인지 침인지로 얼룩진 누런 종이에
쓰인 글을 발견했습니다.
“애들 엄마에게.
당신이 원망하고 미워하는 남편이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를 보살펴 주어 고맙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날마다 하고 싶지만
당신이 나를 용서할까 봐 말 못했고.
난 당신에게 미움 받아야 마땅하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 같구려.
여보, 사랑하오!
나 끝까지 용서하지 마오.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겠소.”
손에 힘이 없어 삐뚤빼뚤하게 쓴 남편의 편지를 보는
내 얼굴에는 눈물콧물이 범벅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여태껏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 왔습니다.
아직도 가슴 아픈 속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니
얼마나 나이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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