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업과 되먹임|********@불교와수학@

2016. 12. 4. 11:51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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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업과 되먹임

-업: 원형론과 같아…긍정적으로 수용해야-
-되먹임:지금 일어난 일 다음 단계에 영향-

업은 중요한 불교사상의 하나이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조건은 과거의 업의 소치이며, 현재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미래의 업을 정한다’는 생각이다. 눈으로 보는 것, 마음에 느끼는 것 등 정신적 육체적 구체적인 행위 모두가 업의 요소가 된다. 이 생각은 아뢰야식연기에도 있다. 씨로서의 잠재적인 힘이 싹터 활동 에너지가 되어 일상적인 업에 현행(現行·구체화)된다. 씨에서 현행이 발행하고, 또 현행은 즉시 아뢰야식에 심어진다. 또한 그 꽃이 미래를 정하는 새로운 업(씨)을 잉태한다. 현재의 자신의 행위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의미도 있다. 이 사실은
과거의 업 → 현재의 업 → 미래의 업, 또는 씨 ↔ 현행
과 같은 관계이다.

카오스(복잡성의 과학) 이론에는 되먹임(feed back)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난 일이 다음 단계에 곧바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오늘의 일기 상태의 연장선상에 내일의 일기가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금의 행위는 그대로 그 다음의 단계를 결정한다. ‘역사에는 if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은 현재의 상황을 결정했음으로 ‘만일 그때 …했더라면’하는 것은 한낱 넋두리에 불과하다. 인생도 역사와 같이 되먹임의 연속이다. 한편 과거(업)는 부정할 수 없었으나 현재를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있음으로, 결정론은 아니며 누구에게나 미래는 일정하지 않으며 복잡하게 전개되어 나간다.

필자는 원형론을 주장해 왔다. 태고(太古) 때 처음 사회가 형성되었을 당시의 모든 환경조건을 반영하여 사회(넓게는 민족)의 심성, 즉 원형이 형성된다. 일단 원형이 형성되면 다음은 그 원형을 기반으로 해서 다음 세대의 원형을 만들어 간다. 이 사실은 나무의 나이테에 빗대면 알기 쉽다. 나무를 절단하면 나이테가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정확한 기하학적인 원은 아니며 때로는 크거나 작고 부자연스러운 곡선일 때도 있다. 그러니 어떤 나무에도 처음에 만들어진 중심(核)이 있으며 다음 세대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보다 큰 원을 그려 간다. 우리는 조상의 원형(업)을 안고 새로운 업을 구축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넘기고 있기에 업과 현행(現行)의 관계와도 같다.  

     

 

                                                              

                                    가난한 사람들 / 신경희


 

                                    밤을 등지고 사는 새는

                                    지푸라기 한가지씩 입에 물어

                                    해가질 때까지 집을 짓고

 

                                    밤을 지키는 등대는

                                    오늘도 고독을 토해내는

                                    바다 위에 등불이 되어있다.

 

                                    집이 없어도 가난이요

                                    집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으면

                                    그 또한 가난이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군중 속에

                                    말 못하는 가난이 있으니

                                    실직의 가난이요실업자의 가난이라.

 

                                    물질의 과잉시대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

                                    화폭에 그려진 그림일 뿐

                                    살아 숨쉬는 지구 끝에 서 있는 사람들.




선정(禪定)


산 속에서 선정을 닦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경계를 대해서 동요하지 않기가 어려운 일이다.


山間禪定不爲難  對境不動是爲難

 산간선정불위난    대경부동시위난


- 법집별행록절요, 보조 지눌 국사

 

 


수행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효력이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산중에서나 사찰에서 또는 선방에서 조용히 감정의 흔들림 없이 지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수행의 효력이라고 믿기는 아직 어렵다.

경계에 부닥쳐 봐야 안다.

 그래서 예부터 법력이나 수행력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여덟 가지의 바람 앞에 세워보면 안다고 한다. 


   그 여덟 가지 바람이란 이익과 손해와 헐뜯는 일과 칭찬하는 일과

훌륭하다는 소문과 나쁘다는 소문과 고통스러움과 즐거움이다.

이 여덟 가지의 경계를 당하여 아무런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감정의 변화가 없어야 비로소 공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산중에서 선정을 닦는 것은 쉽지만 경계를 대하여 움직이지 않기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 무비스님



 



                                          
                                                 Going Home - 케니 지 (Kenny G) 外 18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