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4. 21:5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同一點)
부처님께서 가비라국 정반왕(淨飯王) 왕가(王家)에 태어나실 때,
대지(大地)에 광명(光明)을 놓아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땅에서는 금련화가 솟아나 그의 두 발을 받드니,
그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칠보(七步)를 걸으시고,
두 손을 나누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시며, 사자후(獅子喉)하시기를
『상하사유(上下四維)에 무능존아자(無能尊我者)라.』하셨다.
이것은 「하늘과 땅 또 사방에 나보다 높은 자가 없다」는 뜻이다.
또 「태자 서응경(太子瑞應經)에도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곧 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제일 높다.』하셨다.
이 말씀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온갖 견해(見解)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석가 세존의 이 말씀의 근본 뜻은 바로 알기 어렵다.
석가 세존의 「오직 <나>만이 홀로 높다」하신 이 말씀은 석가 자신
곧 육신(肉身)이 홀로 높다는 뜻이 아니다.
일체 중생, 심지어 저 곤충까지도 천상 천하에 가장 높은 <나>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세존께서 세상에 나시면서 그 진리를
교시(敎示)하시기 위하여 세존 자신이 홀로 높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지 아니한다.
기독교 성경에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곧 영생(永生)을 얻으리라.』하였다.
그런데 이 말에 <나>라고 한 말씀은 예수 자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가진 참 <나>를 가리킨 말인 것이다.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천국(天國)에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를 다 버리고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였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 자신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나>를 따르라는 말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물으면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이라 하니,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본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석가 세존의 「천상 천하에 나만이 홀로 높다」는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요,
예수님의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신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니,
여기에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상법(事相法)으로 말하더라도 밖으로 쓴 즉 나타나고, 안으로 거둔 즉 감추는지라,
밖으로 공경하는 것을 들어서 안으로는 참된 성품을 밝히고,
나의 성품과 밖의 형상이 서로 응함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불상(佛像)을 위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로 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도리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우상은 배척해야 된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식 밖의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십자가는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성경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부처님도 예수처럼 믿을 것이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님 말씀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가정에서도, 부모는 불교도요 자녀는 기독교도라 해서
그 의견이 서로 같지 않음을 흔히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도
불교를 믿는 부모에게 효도를 달리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불교를 믿는 부모들도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믿는 진리(기독교와 불교)가 겉으로는 다르지마는,
그것은 마치 물은 파도를 여의지 아니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와같이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임을 알아야 하며,
그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남의 옳지 못한 말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비유를 들어 보이리라.
가령 달 밝은 밤에 접시·사발·동이·항아리 등 무수한 그릇에 물을 떠놓고 보면,
그 그릇마다 달은 다 비추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니, 기독교니,
천주교니 하는 것 등은 곧 접시달·사발달·항아리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즉 그 그릇은 각기 다르나 그 달은 같은 달인 것이다.
보라. 청천에 떠 있는 달은 우주에 오직 한 몸만 비추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면 종교란 원래 하나임을 깨끗한 정신으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에서 철학이 어떠니, 심리학이 어떠니, 인생관이 어떠니 하고 떠들며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다.
참으로 위에 것을 달관(達觀)하여 인생이란 것을 철저히 타파(打破)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다 자기가 과거에
어디에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만 번 계교(計較)하고 사량(思量)하여 이르더라도,
그것은 다 뜨거운 불 위의 한 점[一點] 눈[雪]이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글이야 한 자도 모르더라도 내가 전생에 어디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 그 온 곳을
알아야 한다. 그 온 곳을 진실로 밝게 알면, 따라서 내생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참된 인생관이 성립되는 것이고,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金仙耶蘇本面目 부처님과 예수님의 본래 면복이
人前各自强惺惺 각각 사람 앞에 스스로 똑똑하게 밝았으니
一坑未免但埋却 다만 한 구덩이에서 면하지 못하고 묻히면
不知身在眼子靑 몸 가운데에 푸른 눈알이 있음을 알지 못하리라.
- 혜암선사 어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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