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2. 18:1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문] 죽음이라는 문제를 실제로 맞닥뜨리고 나니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무 힘도 쓰질 못했습니다.
[답]지금까지 여러분의 공부가 얼마나 건성건성이었나 하는 반증이오.
그렇게 생사문제가 늘 궁극의 문제로 제기된다는 것은
살고 죽는 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그만큼 큰일이라는소리요.
하지만 아무리 큰일이라도,
그동안 ‘내’가 누려왔던 이 세상이 한 순간
몽땅 끝나버린다는 등골이 서늘한 죽음에 대한 생각도
전부 오직 마음뿐임을 알아야 하오.
아무리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해도 전부 꿈속의 일과 같은 것이니,
하나에도 둘에도 어서 그 꿈에서 깨어나는 일만이
쉬지 않고 몰아치는 감내하기 어려운 온갖 세상사로부터
단박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거요.
바다와 물결과의 관계를 잊지 마시오.
비록 바다의 물결이 천파만파 온갖 모습으로 물결친다 해도
바닷물의 본질은 늘 그대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오.
그 천 갈래 만 갈래의 물결 중에 하나의 물결만
관견(管見)해서 보면
무언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전체로 보면
제 아무리 무수한 물결이 일었다 잦았다 해도
전혀 나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없는 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흥하고 망하고 등등의
전혀 대립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사실은 전부다 한 바탕,
즉 한 마음에 의지해서 나퉈지는 거요.
천파만파가 오직 물에 의지해 있듯이.
그런데 어리석게도 여여부동한, 생멸 없는
그 한 마음을 등지고
그 위에 나타난 온갖 허망한 그림자를 취해서
실체로 오인하고 집착함으로써 지금 여러분 목전에 펼쳐진
온갖 시시비비, 생로병사가 있게 된 거요.
생사, 고락(苦樂), 선악(善惡) 등 일체의 차별상은
모두가 그 근본이 참된 하나를 여의는 것이 아니오.
겉보기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여여부동한 본체 자리는 늘 적멸해서
미동도 없는 것이 진실이오.
물결이 물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수속 절차가 필요 없소.
그저 어서 이게 ‘나’라는 그 한 생각 훌쩍 거두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거요.
이 몸은 끝끝내 환화공신(幻化空身)이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마치
허공꽃이 모습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리요.
- 현정선원 법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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