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업의 철학|******@불교의생명관@

2017. 5. 26. 10:10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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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業(karma, 行爲)의 哲學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업(業)이란 행위의 습기(習氣)를 말한다.
세속에서는 보통 업 하면 졸업, 직업, 학업, 가업, 기업, 사업 등 제반의 숙달과정에 들어가고 있는 행위의 지음에 의한 결과를 뜻하기도 하지만, 숙달된 행위의 연속이나 모든 초보적인 행위과정을 업이라 한다.
학생, 교사,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등이 모두 직업(職業)이다.
이것은 세속의 업인 것이다.
어떤 직접적인 원인(因)에 의한 행위이든 간접적인 원인(緣)에 의한 행위이든 이 행위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원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의 모든 행위를 업>이라 한다.
마음에 잠재하여 있는 의식(意識)의 작용상태도 업(業)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므로 모든 생명을 가진 유정물(有情物)은 과거와 현재의 의지작용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동작을 업보(業報)라 하는 것이다.
업이란 행위(行爲) 이전의 잠재력(潛在力), 습기(習氣)와 현재의 행위나 과거에 있었던 행위, 더 나아가 미래의 행위를 업(業)이라 한다.
그러나 잠재적 습기에 의한 현재의 행위에 대하여 전혀 원인을 모르고 앞으로의 행위에 대한 원인도 모르는 수가 허다하다.
이것은 잠재적 의식에 의한 것이므로 모르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업식(業識: 행위에 의한 기억의 뇌리에 사무쳐 배인 알음알이)을 쉬게 하려면 열 가지 선행 (善行=十善行)을 하며 마음을 선정(禪定)에 들게 하여 지혜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다.
잠재의식에 배인 행위는 마치 배냇병과 같이 사상(思想)의 고질화를 낳게 하는 것이다.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버릇이 행위이며 업의 소산인 것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만, 우리들 자신이 세 살이나 두 살 때의 기억을 전혀 못하고 있으면서 의지행위의 작용을 해왔듯이 의식작용이 기억에 없다고 세 살 때의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전생의 업도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3초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차 앞으로 끼어 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침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들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는 않은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 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자.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 할 것이다.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을 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잘못을 뉘우치면 내 품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한잔 술을 부어줄지 모른다. 출처 :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