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내생 선분양제도
불교닷컴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천국과 내생은 선분양제도이다.
사람들은, 지금 아파트 20평을 50평으로 넓혀주는 것과, 그냥 20평에 살고 내생에 100평을 받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택할까? 또는 지금 10평 쪽방을 30평 아파트로 업그레이드 받는 것과, 그냥 10평 쪽방에 살고 내생에 만 평 대저택에 사는 것 중 어느 쪽을 택할까? 아마 100이면 100, 지금 넓은 집에 사는 걸 택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에이즈 암 간경화 등 질병에 걸린 사람은, 지금 완치되는 것과 그냥 죽도록 고생하며 살다 죽은 다음 내생에 '영원히' 아무 병에도 안 걸리고 사는 것 중 어느 쪽을 택할까? 아마 100이면 100, 지금 완치를 택할 것이다.
이로부터 중대한 결론이 나온다. 사람들이 내생에 희망을 두고 매달리는 이유는 현생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현생에 가능한 일이라면 현생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현생에는 안 이루어지고) 내생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가능한 일이라면 '지금'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지금'은 안 이루어지고) 내생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금' 넓은 집과 질병의 완치를 택하지 '내생'의 넓은 집과 질병의 완치를 택하지 않는다. 설사 내생에 넓은 집에서 병 없이 '영원히' 산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생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수록, 내세에 대한 희망도 믿음도 약해질 것이다. 과학기술과 사회제도(경치 경제 교육 의료 복지 제도)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을 늘인다. 과학기술과 사회제도가 가장 발달한 북유럽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고 무신론자들도 가장 많다.
행복한 사람은 내생을 생각하지 않는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신통력에 대한 동경이 대단했다. 축지법 경공술 철사장 장풍과 십팔나한백팔음파신공 등 듣도보도 못한 기괴한 이름의 무공이 어지럽게 눈부시게 등장하는 무협지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수천 권 독파는 흔한 일이었다.
먼 옛날 부산 사람이 한양 구경하려면 걸어가는 데만 왕복 2달이 걸린다. 설악산 백두산 등 명승지 구경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풍랑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배멀미를 생각하면 한라산 구경은 더욱 꿈도 못 꿀 일이다. 봄에는 보리농사 모내기 여름엔 논밭관리 가을엔 추수로 정신없다. 농한기인 겨울에 길 떠났다가는 한데서 얼어죽기 딱이다. 그래서 축지법은 장미빛 꿈이었고 그걸 구사하는 도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리적 거리의 질곡을 뛰어넘은,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거기다 자기와 남의 전생과 후생을 아는 숙명통과 천안통을 갖추면 시공의 제약을 벗어난 대자유인이었다.
중이 되면, 설사 축지법 신통력을 못 얻더라도, 지어야 할 농사와 부양해야 할 처자식 양친부모가 없으므로 표표히 주유천하할 수 있다. 중의 매력 중 하나이다. 새봄에 연두색 새순이 돋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매미울음이 플라타너스 잎을 흔들고, 늦가을에 유채색으로 물든 잎이 바람을 소슬하게 부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서산스님의 묘향산 구월산 금강산 지리산 관람기가 생각난다. 난 전생에 중이었기를 바란다.
그리운 사람과 헤어지면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다.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그리운 님의 모습도 목소리도 보고 들을 길이 없다.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천안통 천이통 등 신통력을 동경했다.
그런데 지금은 보고 싶으면 비행기 자동차 고속기차를 타면 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화상통화를 하면 되고, 음성이 그리우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하면 된다. 일년열두달365일24시간 언제나 가능하다. (얼마나 과학기술이 발전했는지, 인공위성에서 쏜 레이저 광선으로, 음성이 만들어 내는 유리창 진동을 잡아내서 실내에서의 대화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
신통력이 화제에서 사라지고 젊은이들이 무협지를 안 읽고 종교를 안 믿는 이유이다. 스마트폰 소유와 종교 소유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천국은 선분양 제도이다. 아파트 분양은 선분양이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돈을 미리 지불한다. 천국은 모델하우스도 없다. 호객꾼인 성직자들의 손에 들린 분양안내서인 경전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분양대금 치르는 방법만 자세히 쓰여있지 정작 천국에 대한 언급은 부실하다. (불교는 그중 낫지만 문제는 천국사업이 후대 제자들이 창립회장인 부처님 몰래 벌이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천국의 규모 종류 설계를 제 마음대로 했다. 그래서 최고급 천국인 무색계4천은 여자들은 입주불가이고 입장불가이다.)
천국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여행기에는 천국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다. 그냥 살기좋다고 한다. 잊힐 만하면 한번씩 한반도를 강타하는 건강식품 같다. 몸에 좋긴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몸에 특별히 좋은 게 아닌) 산수유와 같다. 몸에 좋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 먹는 한국사람들은 천국도 그런 식으로 구매한다(신앙생활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천국건설회사이자 분양회사인 종교에 '중도금'인 헌금을 납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다. 많은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므로 죽은 후 천국에 못 가고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천국 문 앞에서 경비천사에게 쫓겨난다. 부디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그래서 한국에 수많은 종교가 있다.
종교가 제공하는 천국은 거대 아파트 단지로서(불교천국은 사이즈가 무한대이다. 중생의 수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모델하우스도 없는 선분양이지만(거대한 건설규모에 따른 자금조달문제와 미분양사태로 인한 파산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불을 받는 선분양을 한다고 한다. 물론 천국선분양 얘기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수많은 천국분양사업이, 많아야 하나만 참이고 나머지는 다 사기분양이라는 점이다. 서로 나머지는 사기라고 비난하고 고발하므로 필시 사실일 것이다),
개인주택은 선분양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설계해서 돈이 되는 대로 지으면 된다. 죽은 후에 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 수 있다. 유심천국의 입장에서 보면 천국은 항상 지을 수 있다. 땅을 살 필요도 없다. 무한히 넓은 자기 마음에 지으면 되기 때문이다. 대뇌신피질에는 오락 도박 시기 미움 질투 인터넷게임 환망공상 등으로 오용하는 땅들이 많다. 멍할 때 쓰는 유휴지(쓰지 않고 묵히는 땅)도 있다. 이 땅에 지으면 된다.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돈이 많아질수록 개인주택을 짓고 산다. 영적으로 부자가 될수록 선분양 아파트 단지 분양을 받지 않는다. 자기 마음에 행복이라는 개인주택을 건설하고 산다. 우리 모두 영적부자가 영적재벌이 되자.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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