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⑵⑤업과 무아론|******@불교의생명관@

2017. 7. 16. 21:04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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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호랑이


(5) 業과 無我論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업에 의해서 윤회의 세계가 나타난다.
윤회는 생명의 무한성의 상징으로 의미가 부여됐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생사세계의 무한성이다.
업에는 두 개의 요인이 존재하여야 한다.
즉 업을 만드는 주체(作者)와 그것에 의해서 만들어진 업이다. 이 주체는 윤회의 주체이고, '아(我, atman)'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교는 '아가 존재하는 무아론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무아론과 업론은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은 일찍부터 유럽의 여러 학자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유럽인으로서는 '아'는 행위의 주체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무아론은 윤리적인 의미를 잃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인간의 의식 내부에 아를 가정하거나, 또는 인간은 의식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의식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들이 인과관계를 발견하기도 하고, 논리적인 지식의 육체를 구축하는 것을 모두 '아'로 인정한다.
그들은 이런 아를 부정하는 무아론은 업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문화도 부정하는 논
의라고 말한다.
업과 무아론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의문은 그 학자들에 한한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에 의해서도 같은 경향의 의문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알게 된다.
즉 사후에 윤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소멸한 육체인가, 혹은 영혼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 20세기의 의문은 이미 기원전 2세기 미린다 팡하에 나타나 있는 고대인의 의문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미린다 팡하에 나타난 한두 개의 문답을 인용해본다.
미린다왕이 나가세나 비구스님에게 「현재의 몸과 마음(namar-upa: 명색)이 다음 생에서 태어나는 (patisandhi)것인가.」라고 묻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악의 업에 의해서 다른 새로운 몸과 마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태어나기 때문에, 악업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스님은 말한다.
현재의 주체는 부정(無我)되지만 업에 의해서 새로운 주체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같은 책에서 흥미있는 비유로 실체적인 아의 부정을 설한 곳이 있다.
즉 여기에 한 여자가 있어서 남자가 구혼하고, 약혼의 증거로 돈을 주고 나서 멀리 떠났다고 한다.
그 여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다른 남자가 나타나서 또 구혼하고서 그녀를 데리고 갔다.
먼저 남자는 자기의 처라고 말한다. 후에 구혼하고 데리고 간 남자가 말한 것에는 「네 처가 아니다. 네가 구혼했던 사람은 어린 여자였고, 지금 내가 구혼한 여자는 성인이 된 처녀다. 그러므로 네가 구혼했던 어린 여자와는 다르다.」하였다.
나가세나 스님은 왕에게 「이 경우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서 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왕은 「앞의 남자가 옳다. 같은 여자가 성장한 것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어린 여자라는 존재를 상주불변하는 실질적인 존재(我)라고 한다면, 성장한 여자는 전과 다른 실질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그 여자란 존재는 상주불변하는 실질적인 존재가 아니기(無我) 때문에 성장도 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아(我)가 없기 때문에 성장도 할 수 있었다.
무아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존재(法)의 상속(相續)이 계속되는 것이다. 생한다는 것과 멸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나 앞도 뒤도 아니고 계속하며,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최후의 인식을 대신한다. 등불의 비유에서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 타는 등불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것이다.
등불의 계속에 의해서 무아의 이론을 설한 방법은 후에 발달한 불교에 있어서 일관하여 사용되는 비유로 되어 갔다.
이와 같이 사후에, 다음 생에 태어나는 심신(心身)은 현재의 심신이 아니다.
업에 의해서 새로운 심신으로 태어난다. 더구나 그 심신도 또한 상주불변하는 아가 아니다.
심신을 때로는 있게 하고 때로는 없게 하는 작용을 갖는 것이 업이다.
심신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항상 업에 의해 나타나서는 없어지는 현상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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