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⑵⑧업과 사후 생존의 문제|******@불교의생명관@

2017. 8. 19. 13:33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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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業과 死後 生存의 問題

佛敎와 自然科學 / 朴淳達·吳亨根·曺勇吉·金成九 共著 集文堂 1992. 8. 30

사후의 생존을 바라는 마음은 인류의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소원일 것이다.
이 소원에 관한 한 아무런 퇴보도 없고, 변화도 진보도 없다.
영혼의 영생에 대해서 세 종류의 수용방법이 있다.
첫째는, 신앙에 의한 것으로 원시민족의 방법이다.
둘째는, 이것을 철학에 의해서 실증하고자 하는 것으로 고래의 철학자들의 방법이다.
셋째는, 과학적인 실증에 의한 것으로 심령과학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신앙 혹은 철학에 의한 신념으로써 남에게 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반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객관성을 갖지 않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재감에 잠길 뿐이다.
그런데 현대 지식인에게 믿게 하기 위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영혼의 실재를 입증하고자 하는 심령과학이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그 방법이 과연 과학적인지 어떤지를 의심하는 경향도 있으나, 그 심령과학도 영혼을 내보이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마술적인 방법은 지식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심령과학은 점점 의식을 초월한 세계의 연구로 변해갔다.
그렇다면 이제는 심령과학이 기대했던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낮은 의식차원의 연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영혼의 실재성은 원시민족과 같은 신앙에 의하던가, 혹은 철학과 같은 합리적인 사고로서 추리되던가, 그 어느 것에 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령에 관한 한 여기에도 또한 고대와 현대 사이에 어떠한 진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혹은 동북아나 일본에 많이 보이는 것처럼 샤먼과 무녀의 영매를 믿어야 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신앙, 철학, 심령과학에는 공통된 두 개의 전제가 있다.
그 하나는 영혼을 실제적이고 형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생리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태로부터 태어난 것을 삶이라고 하고, 육체가 볼 수 있는 세계에서 소멸된 것을 죽음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불교의 업론도 윤회전생론도 이와 같은 선에서 고려되고 있다면 적어도 인도의 고대사상을 비판한 불교는 아니다.
또한 영혼의 영생에 대한 소망과 그 실증을 종교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만약 그 짐도 종교가 완수할 의무라고 한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면에서 불교는 종교요 철학이요 윤리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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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적시는 노래 모음 ♣ 
01.세모와 네모-안개비
02.햇빛촌-유리창엔 비
03.바람꽃-비와 외로움
04.김범용-겨울비는 네리고
05.버블껌-비야비야
06. 채은옥 - 빗물
07. 산이슬 - 밤비야
08. 우순실 - 잃어버린 우산
09. 이은하 - 봄비
10. 도원경 - 이 비가 그치면
11. 조용필 - 내 가슴에 내리는 비
12. 버블껌 - 연가
13. 김세환 - 비
14. 배따라기 -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
15. 이연실 - 소낙비
16. 배따라기 - 비와 찻잔 사이
17. 강인원 - 비오는 날의 수채화
18. 김범수 - 비가 와
19. 최헌 - 가을비 우산속에
20. 윤형주 - 어제내린 비
21. 김범수 - 비처럼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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