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4. 16:2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깨달음에 소요되는 시간적 문제
- 종경록에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이치에 대해 혹 어떤 사람은 일념에서 성취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삼대아승기겁이라는 셀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수행해야만
가능하다고 말들을 하나 잘 모르겠다.
이 둘 가운데 어떤 문장을 단정적으로 취하여 이것만이 옳다고 후학들에게
인가해 주어야 하는지를.>
깨달음을 성취하는 근본이념은 시간이 길고 짧은 데에 관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시간의 더딤과 신속함을 말하는
가르침은 중생들의 근기에 알맞게 시행하는 방편에 속한다.
그러므로 기신론에서는 이 문제를 밝히기를
<신심을 내어 용맹하게 정진하는 중생을 위하여 깨달음의 성취는
일념 사이에 있다 말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중생을 위하여 삼대아승기겁
동안의 수행이 가득 차야만 깨달음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고 하였는데, 이들 말은 가르침의 자취로 나타난 언어이므로 이 모두는
끝까지 허구적인 임시의 방편을 이룰 뿐이다.
능엄경초에서는 말하기를
<겁이란 시간에 따른 그 분야의 의미이다. 그리하여 시간의 분야로 나눈
성주괴공의 겁 모두가 중생들이 허망하게 분별하는 견해를 따른 느낌일 뿐,
그 시간의 실존은 끝내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란 망상을 따라 생멸하는 눈앞의 공간적인 세계를
의지하여 성립하는데 그 세계는 망상의 그림자일 뿐, 진여일심에서는
그 실재하는 모습이란 본래 공적하기만 하다.
따라서 그것을 의지하여 성립하는 시간의 분야도 그 실체가 없게 마련인데
어찌 다시 시간적인 수량의 많고 적음을 논변하랴.
단지 일념에서 근본무명번뇌를 끊기만 한다면 어느 겨를에 다시
아승기겁의 수행을 편력하겠는가.
그러므로 수능엄경에선 말하기를
<나와 모든 세계를 허깨비처럼 실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여환삼매에
들어 손가락을 퉁기는 극히 짧은 순간에 번뇌가 끊어진 무학의 경지로
초월한다.> 하였다.
다시 말하기를 ,
<형질과 그 감촉에서 받아들여진 느낌에 대한 인상이 오진경계가 되고,
그것을 실재인 양 분별하고 집착하는 허망한 마음이 더러운 번뇌의 때가 된다.
따라서 이 둘을 함께 멀리 여의면 그대가 세계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멀리 여읜 그 시간과 호응하면서 청정해지리라.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위없이 보편하게 아는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랴.>고 하였다.
또 원각경에선 말하기를
<나와 세계는 허깨비처럼 실재가 아님을 알고 집착에서 그 즉시 떠나면
다양한 수행방편을 조작하지 않게 되며, 허깨비 같은 허상의 집착에서 떠나면
즉시 깨달음이므로 역시 수행의 점차도 없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 것은 길고 짧은 시간이란 일념을 따라서 찾아 왔으면
삼승 수행인들이 시간적인 선후의 차이를 따르면서 깨달음의 결실로
취향해 가는 이 모두까지도 꿈속의 일일 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성취할 때의 일을 말해 본다면 이 모두는 일념의 찰나일 뿐
많은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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