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수 일투족이 불성의 응현이다

2018. 10. 13. 11:0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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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머리로 설법만 듣고 깨달을 수 있을지,

 왠지 무언가 몸으로 행함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답변 >

 불법 공부는 지금 현재 여러분이 그 자리에 앉아서 하고 있는

일거수일투족에 달려있는 거요.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몸과 마음을 달달 볶아서 그 보람으로 훗날,

성인의 지혜, 성인 행리(行履)를 얻게 되는 그런 게 아니오.

 지금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 그대로가 진리의 나툼이고,

불성(佛性)의 응현임을 알아야 하오.

지금 이렇게 설법을 하고 몸짓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도 전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 진리는 설(說)할 수도 없고 드러내 보일 수도 없는 거요.

하물며 깨닫기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말은 전혀 감도 못 잡고 어방없는 데서

헛손질 하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소.

무엇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 이미 철저히 유위행으로 어쩌겠다는 소리며,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오? · · · · · ·


진리를 아오?그저 그 영성(靈性)이 환히 밝게 빛나도록 그냥 두시오.

괜히 ‘나’라는 놈이 끼어들어 깨닫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둥 저렇게 한다는 둥

뽀얗게 먼지 피우지 말고. 영성은 모습도 없고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소.

아기가 태어날 때에도 그 아기의 본 성품은 아기의 육신과 함께 태어나지도 않고,

노인이 죽을 때에도 그 노인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지도 않소.

본 성품은 생멸이 없소. 가고 오고, 늘고 줄고 하는 법도 없소.

그게 여러분의 본 성품이요, 그게 ‘참 나’요. 그 성품을 보라 소리요.

금 이렇게 말하고 거기 앉아서 알아듣고 하는 모든 지각활동을

가능케 하는 그 성품이 바로 ‘참 나’요.

지각활동으로 보면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게 분명하지만,

성품자리에서 보면 이 세상 일체 만유가 울퉁불퉁 와글와글 하는 이대로인 채로

그대로 공적(空寂)한 거요.

그래서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라 소리를 하는 거요.


- 대우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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