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 수행의 본질' |…… 혜천스님설교

2018. 12. 23. 11: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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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천스님 일요강론 2011년 10월 2일

'조율 - 수행의 본질'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입니다. 어느 지역, 어떤 인종이든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수행은 이렇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각 민족의 문화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인도의 명상방식은 여러가지여서 인도의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수행은 마음을 조율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앉는것도 행선하는 것도 경을 읽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다 마음을 조율하는 것이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악기의 조율이 필요하듯 사람의 마음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람은 언제나 좋고 편안할 수는 없습니다. 청정심, 평상심은 조율된 마음입니다. 본래부터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행복 또한 조율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분노심에 떱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폭풍이 불고 있는 형국입니다. 영화계에는 도가니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분노심을 불꽃에 비유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 성자들은 종종 인내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왜 인내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전 노예들에게는 인내와 복종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도무지 분노할 수 없었습니다. 니체는 기독교를 혐오하였습니다. 노예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노예들이 할 수 밖에 없었던 덕목이자, 노예들이 믿던 종교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본질적으로 힘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특정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노하지 못하고 인내를 종용하는 것은 노예들의 덕목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내 마음속의 분노는 인내로는 다스리지 못합니다. 오로지 조율로만 가능합니다. 자애심 가득한 마음의 조율만이 분노를 다스릴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분노도 마음의 조율이 필요한 중요한 공부의 재료입니다. 참느냐, 참지 않느냐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보통 분노에 대해서는 참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심화(心火)라고 해서 마음의 질병이 될 뿐입니다. 분노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화약이 가득한 창고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조율되지 않는 수행은 테크닉과 같습니다. 기술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음속의 화약창고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지만, 얼마 전 일본원전 사태처럼 뜻하지 앟는 일이 발생하는 확신의 오류가 생기게 됩니다. 일본의 모수상은 일본의 절반이 사람이 살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마음의 조율은 화약없는 창고를 만드는 것입니다. 원자력 같은 것은 없는 것이지요. 인간이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은 영원한 안락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무어라 썼는데 스스로 해독하기 난해함) 흐트러져 엉망인 현악기라도 조율하면 훌륭한 연주가 가능한 것처럼 어떠한 사람도 스스로의 마음을 조율하면 그 사람도 성자의 길을 갈수 있는 것입니다. 앙굴리마라라는 희대의 살인마도 부처님을 만나 스스로의 마음을 조율하여 성자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성인으로 알려져 있는 공자도 대사구(지금의 법무부장관)에 오르자 당시 라이벌이던 소정묘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처형하였습니다. 당시 소정묘는 대중의 인기를 모으던 유명인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정묘를 악인으로 몰아 죽인 것입니다. 이를 두고 공자의 핵심제자였던 자공마저 스승 공자를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공자는 소정묘를 죽인것에 대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공자가 소정묘를 시기해 죽인 정황이 여러곳에 나타납니다. 당시 소정묘는 강연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였지만, 공자는 몇명 제자정도밖에 모이질 않는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공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정묘를 죽여서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이런 얘기는 역사에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인이라도 제 마음을 조율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 마음속에 더깨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잘 들여다 봐야 조율이 가능합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안락을 얻고 누리려면 마음의 조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바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물건이 아니라서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마음은 조율하고 자애심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참고, 인내할 수는 없습니다. 참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화약고를 끌어안고 살며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유효한 수단이 화약을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폭발시키지 못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화약이 두려워 그 화약을 끌어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화약고를 끌어안고 사는 한 안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기와 분노, 좌절, 절망을 억누르는 것은 화약을 차곡차곡 재워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 화약이 적을때는 위험이 적지만  많아지면 위험도가 올라가겠지요.

 

고백하건대 저는 화약을 사용한 적이 많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다닐때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 화약을 터뜨려보기는 했지만 이것 이외에는 화약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70년대 이리역 폭발사건때 이리시민들은 전쟁이 났는지 알고 남부여대 피난행렬을 꾸렸다고 합니다. 내 삶의 다이너마이트가 있으면 황무지가 될 뿐입니다. 마음의 황무지는 마음이 자꾸만 황폐화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형다음에 쎈 형벌이 위리안치였습니다. 탱자나무 가시는 촘촘하여 개조차도 지나다닐수 없습니다. 연산군때부터 시작된 형벌이라고 하는데 연산군 폐위 후 위리안치형을 당해 석달만에 죽고마는 아이러니도 있었습니다. 땅위의 탱자나무는 톱으로 자르고 불태워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황무지는 베지도 불태워버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조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스스로 조율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마음의 조율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으나 최종적으로는 자기자신이 이룰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조율사라 할지라도 어느정도 쓸만해야 가능할 것이겠지요. 이처럼 스스로 마음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좌선을 하거나 행선, 기도, 경전을 읽는 것은 이렇게 마음을 조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조율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런 공부와 수행의 궁극의 목적은 마음의 조율입니다. 수행은 더이상 몸의 변화라든가 무엇을 바꾸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얻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하에서 수행을 하시며 어든 것은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 낸것이 아닙니다. 기록상으로는 무엇무엇이 나열되어 있지만 부처님이 보리수하에 앉기전이나 앉은 중이거나 앉은 후에도 마음을 조율하신 것입니다. 금강부동심은 무엇이 터지거나 개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발견한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진시황이나 알렉산더, 징기스칸, 아인슈타인 등드의 성취보다 이 마음의 발견이 중요합니다. 현대의 과학이나 철학도 인간의 마음이라는 바탕위에서 성립한 것입니다. 수행은 마음을 조율하는 것이고 행복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조율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스스로 느낄수 있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누리고 나눈다면 모든사람이 똑같이 행복할까요?  보편적인 행복지수는 조금 올라가겠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러하겠지요.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저항 하고 굴욕이나 모욕으로 느끼고 오히려 명동거리에 거지복장으로 떠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일하고 잠자고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하기 위해 이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좋은 점은 첫째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수행은 따로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둘째로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생활하면서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마음을 항상 갖고 있기 떄문입니다. 마음은 이처럼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마음을 잘 조율하면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당포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무가보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값어치로 따질 수 웂는 마음의 가치를 잘 살려야 합니다. 언제까지 시기와 질투, 분노와 좌절 등의 마음속 가시를 꽃꽃이 세운채 갖고 갈 것입니까. 숨이 끊어지는 순간, 저는 그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그 순간이, 그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타인의 슬픔은 자신의 슬픔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조율입니다. 조율된 마음은 언제나 행복한 것입니다. 열반은 조율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선우님들도 마음의 조율 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워낙에 글씨도 안좋은데다, 강론들은지 며칠이 지난 상태로 중간중간 문맥에 문제가 있음을 심심스럽게 사과드립니다. 미세한 자구에 얽매이지 말고 큰 틀로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창살로 행복한 햇살이 밝게 비추입니다. 두루 행복하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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