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造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2019. 2. 16. 09: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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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외도(外道)는 부처(佛)의 참뜻을 알지 못하기에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으니, 이는 성인의 뜻과는 어긋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뒤져도 신령스런 본성(本性)에

어두우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치 못한다. 


부처(佛)는 한가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바삐 두루 명성과 이익을 찾겠는가?

그래가지고 나중에 어디에다 쓰겠는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見性하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하고, 절수행을 하고, 기도하고, 늘 배우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늘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佛法)으로 삼는다. 

이러한 어리석은 중생은 모두가 불법(佛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조작(造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조작하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나지 못한다.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頓敎) 대승(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 인(忍辱), 정진(精進), 고행(苦行)은 말하지 않는다.


[달마대사의 혈맥론]



 부처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외도(外道 : 바른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는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는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들도 이 불교 공부에 힘써 노력하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불법을 열심히 갈고 닦으며 수행하고 있지 않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불교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

(固定觀念)을 내려놓고, 달마대사의 이 선어록(禪語錄)인 혈맥론(血脈論)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위적으로 애쓰고 노력해서 공부하는 것은 유위(有爲)의 공부일 뿐,

불법(佛法)의 참 맛인 무위(無爲)의 공부는 아니다.

불법(佛法)은 무위법(無爲法)이지 유위법(有爲法)이 아니다.

불법을 인위적으로 애쓰고 노력해서 열심히 갈고 닦아야지만 불법(깨달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편견, 고정관념이다.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보면서 독송하더라도, 신령스러운 본성

(본래성품, 불성, 근본성품, 부처, 道, 진리, 깨달음, 본래의 나)에 어두워 

어리석으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佛)는 한가한 사람, 한도인(閑道人)이다. 바쁘게 뛰어다니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부처(佛, 禪, 法, 道, 진리, 마음바탕, 깨달음)이 아니다.

부처는 모든 분별 망상 번뇌를 푹 쉬었는데 바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는 할 일을 이미 다 해 마쳤는데, 더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실은 바로 지금 여게 있는 우리가 그렇다. 우리가 부처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우리들 또한 할 일을 다 해 마친 한가한 사람들,

한도인(閑道人), 부처(佛), 선(禪), 법(法), 진리, 마음바탕, 깨달음 그 자체다.

 그러니 우리들은 바삐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추구하고 얻으려 할 필요가 없다.

염불하고, 독경하고, 공부하고, 앉아서 참선하고, 기도하고, 두루 배우는 것을

공부로 삼지 말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불법(佛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불법(佛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모름지기 본성(本性)을 보는 것, 즉 견성(見性)이 마음공부의 핵심이지,

기도하고, 절하고, 주문하고, 독경하고, 좌선하는 수행이 핵심이 아니다.

견성공부, 마음공부, 선(禪) 공부는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 열심히 하는

공부가 아니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갈고 닦아야 하는 공부도 아니다.

그냥 그저 간절한 발심(發心)과 스승의 가르침에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힘을 쭉 뺀 채로 오로지 법(法, 진리, 깨달음, 부처, 道, 禪, 마음바탕, 본래의 나)

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법문(法門)을 듣는 것이 선 공부, 견성공부, 마음공부다.

그 공부는 억지로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 하는 공부가 아니다. 


마음공부는 그저 내면,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저절로 되는 공부다.

저절로 되는 공부에 진짜 힘이 붙지, 억지로 하는 공부에는 힘이 붙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발심(發心)도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발심이

되는 것이지, 억지로 인위적으로 발심한다고 해서 견성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조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억지로 갖추어야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세상 이대로 그대로 두어도 본래부터 이미 언제나 완전한데,

왜 애써 노력하고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자 하는가?


당신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그대로도 이미 완전하고 충분하다.

충분히 완전하고,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며, 충분히 괜찮다. 어떤 무언가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이

갖춰야지만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을 더 많이 성취해야지만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완전하고

충분하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더 성취하기 위해 그 어떤 것을 따로 하지 않아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살아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오직 돈교(頓敎)의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곧장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전(傳)하실 뿐, 지계나 보시, 인욕, 정진과 고행은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에게 본래부터 이미 완벽하게 있던 진리(法, 道, 禪, 본성, 부처, 깨달음,

본래의 나, 마음바탕)을 드러내 보여주실 뿐, 본래 없던 것을 애써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과 고행을 통해 인위적인 노력과 애씀으로 진리를 만들어

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