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眞理), 도(道), 부처(佛), 하나님, 깨달음

2019. 3. 24. 10:1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신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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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 道

진리(眞理), 도(道), 부처(佛), 하나님, 깨달음,



지도무난 유혐간택 (至道無難 唯嫌揀擇), 신심명(信心銘)의 척 구절이다.

지극한 도(道)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직 '가려서 간택하는'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만 매 순간 있는 지금 여기에 그대로 존재(현전, 現前)하기만 하면 된다.


기쁠 땐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며, 우울할 땐 우울해하고, 무료할 땐 무료해하며, 

즐거울 땐 즐거워하고, 배고프면 밥 찾아 먹고, 졸리우면 잠자고, 똥 마려우면 똥 누고, 

오줌 마려우면 오줌 누며, 피곤하면 드러 눕는 것,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진리,

깨달음, 도(道)다. 불법, 진리, 깨달음, 도(道)란 매 순간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양나라 때의 승려인 부대사(傅大士)의 다음과 같은 詩가 있다.


夜夜抱佛眠(야야포불면)   朝朝還共起(조조환공기)

欲知佛去處(욕지불거처)   語默動靜止(어묵동정지)


밤이면 밤마다 부처를 품고 자고 아침이면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난다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자 하거든 말하고 있는 당처, 침묵하고 있는 당처, 

움직이고 있는 당처, 조용히 있는 당처, 그 자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알아채라.


성경에도 이와 똑같은 '길(道)'을 우리에게 가리켜 보여주고 있다.


"너희는 나 외에는 다른 신(神)들을 너희들에게 두지 말라" (출애굽기 20:3)

이 말씀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모세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십계명' 중의 첫 번째 계명이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결코 특정 종교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만물 가운데 하나인 인간이 만든

종교 안에만 있는 분이 결코 아니며, 더구나  인간이 만든 종교 가운데

어느 한 종교에만 속한 하나님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믿지 않는 종교의 믿음은 전적으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몫일 뿐

'하나님'과는 전적으로 거리가 멀다. 즉, 출애굽기의 말씀은 결코 여호와 이외의

다른 신들, 곧 불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나 그밖에 다른 종교에서 믿는 신(神)들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작고 편협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어서 볼 수도 없고, 소리로 들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지만,

계시지 않는 장소가 없고, 있지 않는 순간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 여기 이순간 이 자리에 계신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렇기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는 이 말씀은  곧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하라"는 말씀이다.

매 순간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때이니,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살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것 - 부정적인 생각, 슬픔, 분노, 질투, 무료함,

심심함, 공허, 우울 등 - 이외에 다른 무엇, 이를테면 고요함, 기쁨, 평화, 넉넉함,

즐거움, 충만, 행복, 깨달음 등을 찾아나서거나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매 순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무언가를 찾아다닐수록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고, 모든 참되고 영원한 것들, 불생불멸하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만 영원한 진리(眞理)를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眞理), 진실(眞實), 진짜, 실재(實在)이신 하나님은 애틋하게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다시 말해 " 너는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현전하라"고 말이다.


-김기태의 <무분별의 지혜> 중에서 


법안(法眼)스님은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에서 다읍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 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하구나.

   고개를 들어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를. 너무나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하였다.

한산자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몸 쉴 곳을 얻고자 하는가.

   한산(寒山)을 길이 보존하오.

   산들바람 그윽한 소나무를 스치니

   가까이 들을수록 더욱 좋아라.

   그 아래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술술 불경을 읽는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가질 못하여

   왔던 옛길마저 잊었어라.


영가(永嘉)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이 모두 한낱 거울 위의 티끌이다.

   티끌이 사라질 때 광명이 나타나듯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본성 그대로가 참이네

 
 박보람 (Park Boram) - 혜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