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속살] 조선일보가 공격했던 ‘노회찬 아내’, 노동운동가 김지선···’인천 노동계 큰누님’의 삶•2018. 7. 25

2020. 4. 18. 22:01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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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조선일보가 공격했던 ‘노회찬 아내’, 노동운동가 김지선···’인천 노동계 큰누님’의 삶

노회찬 부부의 삶

김지선 노회찬의 부인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분 아녀

노동운동가 김지선 독립된 고유명사로 합당한 분

인천지역 노동운동가 사이에 김지선의 남편 노회찬이 더 익숙

상주노릇을 이정미대표와 김지선 부인이 해

슬하에 자녀 없어

인천지역 노동운동가지만 출발은 달라

노회찬 의원은 학출

김지선님은 정통 노동자 출신 1955년으로 나이 많아

중졸로 인천에서 노동자의 길 걷기 시작해

노회찬의원이 삼성X파일인가 떡값검사 명단 공개로 통신보호법위반으로 

의원직 살실

2013년 4월24일 보궐선거 안철수 당선만 기억하는데

진보 정의당 후보를내는데 그 후보가 김지선 

노회찬의원이 부당하게 의원직을 잃었으니

남편을 대신해서 후보를 냈구나 사람들은 생각

즉 노회찬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기 쉬워

노동운동가 김지선 그자체로 너무 훌륭해

방송 인터뷰에 노회찬의원의 부인으로 출마한게 아냐 밝혀

남편이 나보다 먼저한건 국회의원 밖에 없어요 농담

인천지역의 대모로 활동

별명이 인천노동자의 큰누님

이분이 노동자생활 시작한게 16살

노동운동 처음 시작은 19살

인천수출 4공단 삼원섬유라는 회사에서 노조 만들기 시작해

이 해가 1973년 그러니 유신 직후

나라가 정말 살벌하기; 이를 데 없던 해

목숨은 건 신념

상상을 하기 힘든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

1978년 첫번째 구속

구속도 노회찬의원보다 빨라

이른 바 여의도 부활절 사건

동일방직이라는 회사 있어 노동자 1300명 정도

그 중 1200명이 여성노동자

노조 있었지만 어용노조

1972년 여성노동자 주축 정상 노조 만들어

당연히 회사 악랄한 탄압 시작

1976년 노조위원장 선거 시 선거못하게

여성노동자 기숙사를 밖에서 잠궈버리는 황당한 일 벌여

노동자 파업 시작시 영화에서 봄직한 대테러 전쟁같은 걸 벌여

일단 수도와 전기 끊어

음식물 반입 차단

니고시에이터의 인질 잡을때나 하는 일

이런 악랄한 탄압속에서도 근근히 민주노조 전통을 근근히 이어가는데

1978년 2월 노조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사측에서 이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남성노동자 매수해 대회장 습격해

어서 똥을 퍼와 확뿌리는게 아니고 발랐다는 기록이 있어

여성노동자들을 완력으로 옷이나 몸에 섬세하게 바르는 것

똥이나 쳐먹어라는 욕설과 함께

심지어 입에도 바르는 짓을 저질러

유명한 동일방직 똥물 사건

이걸 경찰이 보고 있었는데도 수수방관 뿐망 아니라 응원까지

이 사건 이후 노조가담 노동자 124명 해고

그냥 해고만 한게 아니라 리스트 만들어 다른 회사에 돌려

요즘 말로 블랙리스트 만들어 악랄하게 돌려

당시 동물  사건 사진이 하나 있는데

그 사진도 언론보도 아니라

공장 근처있던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여성노동자 얼굴과 작업복에 덕지덕지 묻어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사진이 없었다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을 터

그 사진관 사장님이 끝까지 보존하려 해 고마운 사장님으로 기억

이 사건에 항의하며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의 노력으로 열흘간의 단식 마치고 복직

추기경과 같이 한 약속을 사측에서 어겨

복직노동자들에게 다시 노조활동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이 대립이 이어지는 와중에

3월25일 부활절 전날에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데 언론사 안오니 방법이 없었어

그 다음날 부활절에 여의동에서

대규모 연합 예배 예정이 되어 있어

진보교단과 보수교단이 처음으로 연합한 예배했다는 기록 있어

서경석, 인명진 진보목사들이 유신반대 집회문건 돌리다 잡혀간 기록도 있어

17개교단이 수십만이 모이는 집회였다고 해

기독교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 되기도

동일방직 노동자들에게 마이크하나 주어지지 않고 언론 관심 없어

그래서 자신들의 절박함을 여기에서 호소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3월 26일 부활절 행사시

기도할 때 올라가자 목사님이 기도시 단상으로 5명의 여성노동자 올라가

노동3권 보장하라

똥물먹고 살 수 없다

민주노조 보장하라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

구호를 외쳐

이 구호를 외친 분중의 한 분이 김지선님이였어

김지선님은 당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이때 첫번째 구속되는데

검찰 구속때 보여준 태도가 실로 놀라웠어

구속된 6명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고

수사에서 내가 책임자니 나머진 분들은 다 풀어줘라

정말 대단한 용기

1978년그 엄혹한 시기 여성노동자가

감옥에 가서 겪었을 일이 충분히 상상이 가

법정 최후 진술에서

"지금과 같은 정국에서

법정에서 받는 벌은 수치가 아니다

나는 오직 신이 내린 벌만을 부끄럽게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담대하게 이야기하고 6개월간 구속돼

두번째 구속은 1983년

블랙리스트 관련 사건

동일방직과 마찬가지로 여러공장들이 노동운동가들을 해고하고

간부급 리스트를 만들고 사진을 공장마다 돌려

이리스트를 노동부가 관리 해

노동부가 노동자를 보호하는게 아니고

블랙리스트 관리하고 자빠져

여기에 김지선님이 항의하다

전두환 정권때 두번째로 구속

김지선님은 인천노동계의 살아있는 전설 같으신 분

두분이 만난 건 1987년으로 알려져

1987년 인천노동계에서 노회찬은 모를 수있어도

김지선은 모르는 분 아마 없었어

노회찬 의원 살아생전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지선님은 독신주의자였다 해

결혼하면 노동운동 더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라는 이유에서...

노동운동을 숙명처럼 여겼는지 짐작이 가

노의원님이 김지선님을 보고 매우 적극적으로 대시해

프로포즈를 한 번 거절했다는 대목이 있어

두번째 프로포즈로 맺어져

김지선님의 인터뷰를 보면

결혼을 승낙한 이유가

남편도 노동운동을 하니

이 사람과 결혼하면 나도 노동운동을 계속할 수 있겠구나

라며 답해

김지선님은 노동운동이 생애의 숙명같은 거였어

2013년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를 하지만

그 전에도 워낙에 인천지역의 노동운동의 상징이었기에

그 지역 출마를 여러 번 권유 받아

민주노동당 등에서도 권유했지만 거절해

심지어 첫번째 권유는 1988년 민중당 

이재호 김문수 이우재 차명진

마음만 먹었다면 정치진출도 노회찬 의원보다 빠를 수 있었어

지금도 사회운동과 지역운동을 계속해와

노회찬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의원의 배후자가 아니었어

여전히 자기만의 운동을 지속하셨던

운동가 김지선

노동운동, 여성운동, 지역운동을 계속하는

운동가라는 선이 굉장히 분명했어

이런 분에게 전용운전자 붙여서 재벌같다고....

두 분사이에 자식이 없었다는 것도 슬픈 이야기인데

두 분이 나이가 들어서 30대 중반에

1988년 결혼하는데

당시 노회찬 의원이 수배상태였어

수배상태에서 결혼한 다음에

이듬해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노회찬 의원이

결혼 1년만에 구속이 되어

김지선님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해

부모가 노동운동을 계속하면

구속과 수배 이 생활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전제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를 낳고 기를 자신이 없었던 거죠

구속을 면한후 마흔 넘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던 거죠

입양도 하려고 했던 적도 있어

노동운동과 함께 아이도 함께 도란도란 단란한 가정의 꿈도 있었어

당시 입양을 하려면 경제적 여건도 되고

수입도 일정한지 보고 이걸 심사하는데

두분이 노동운동하시는 분이니 서류심사 통과가 안돼

노회찬 의원 회고를 보면

옷을 살 돈이 없어

아파트 재활용박스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어

생활이 이런 정도이니 입양심사에서 통과가 안되었던 거죠

과거에 한때 김대중 정부가

사회기여자 특례제도를 민들었는데

일베를 중심으로 좌빨들이

다 좋은 대학에 보냈다

김대중 탓이다

노회찬 의원딸도 경희대를 다니다

이 제도를 이용해서 이화여대에 편입했다 이런 헛소리를

막 인터넷으로 퍼나른 적 있어

당시 그 마타도어를 노회찬 의원이 트윗했는데

어떤 분들이 카톡등에서 열심히

유언비어를 돌리는데

저는 딸도 아들도 없는

무자직입니다

이 유언비어대로

욕먹는 딸이 하나 있다면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

티격태격하고 까르르거리고 깔깔대는

소박한 행복을 가지고 있었던 노동운동가 붑였는데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가로 산다는 건

그런 소박한 행복이

허락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고

노동자 민증들 곁에 있고자 했던

노회찬 의원의 삶

역사는 단절된 게 아니라

이어진 선과 같은 거라 합니다

과거와 오늘 내일이 쭉 이어져 있는 거죠

우리가 오늘을 사는 많은 이유중의 하나는

과거를 지키고

그 과거를 바꾸려고 노력한

수많은 활동가들의 헌신이

우리가 오늘 누리고 사는 수많은 것들의 토양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과거의 그 활동가가들의 활동따위는

없었어도 상관 없어

노회찬 김지선 같은 활동가들이 없어져도

우리는 오늘 풍요로움과 평등

민주를 누릴 수 있었어

라고 생각하면

여기서부터는 종류가 다른거여서 

더 이상 설득이 안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있고

우리가 사는 역사가 산처럼 모두 이어져 왔다면

우리가 사는 오늘은 

실로 헌신적이었던

노동운동가들,

농민운동가들

지역운동가들

그리고 노회찬, 김지선 같은

부부운동가 노력이 이어져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그분들의 삶을 존중해주고

아껴주고

연대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사회었으면 

좋겠습니다

좌파적폐

부엉이당

수꼴좌파

이런 증오가 아니고

감사와 격려

그분들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해주는

따뜻한 사회이기를

우리가 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