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속살] 진보가 과연 한국 사회의 주류인가?•2020. 4. 28

2020. 4. 30. 21:55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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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진보가 과연 한국 사회의 주류인가?

뉴 노멀

새로운 상식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새로운 상식이 된 것

1950년대~1980년대

1년에 5% 성장하는 고성장시대

2000년대 초반 IT 거품 꺼진 후

2007, 8년 글로벌 금융위기

'고성장'시대 모두 올드 노멀

핌코(PIMCO) CEO 무하메드 앨에리언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뉴 노멀'로 정리

이 경제용어가 정치 지형을 설명하는데 사용

과거에는 보수가 주류, 진보가 비주류

진보가 이기면 '대이변'이라 표현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지선, 2020 총선까지

민주진보진영 4연승

주류 교체, 진보가 주류

뉴노멀시대

경제적 관점에서는

'진보가 뉴 노멀'이라는 말은

성급하고 위험해

뉴 노멀이라는 말을 쓰려면

지금보다 한참 먼길을 더 멀리 가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가 노멀이던 시대와 비교

2차 대전부터 석유파동까지

미국경제는 대번영기

유럽 경제는 영광의 30년

자본주의 큰 성장과 번영

자본주의 역사상 유일한 진보노멀시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래

강력한 정부가 시장을 통제

국민 행복 위한 복지 폭격시대

1942년 윌리엄 베버리지의

베버리지 보고서 바탕으로

평생 복지 사회 설계한 영국

'요람에서 무덤까지; 강력한 복지

국가가 복지를 통해

민중의 삶을 책임지는 것

베버리지 보고서(복지의 바이블) 이후

유럽 각 나라가 정책에 반영

'영광의 30년'이라는 경제 성장기

진보가 노멀, 상식이던 사례

대공황 이후 9번의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 7승 2패(36년중 28년)

10번째 선거에서 공화당이

닉슨을 내세워 1968년 정권 탈환

리처드 닉슨

"이제 모두 케인스주의자다"선언

케인스주의 풀어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복지 정책을 펼치고

민중의 삶을 돌보고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부과

우리나라로 따지면

홍준표, 황교안 등등이

"우리 모두 소득주도성장 지지자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작가 토드 부크홀츠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리처드 닉슨에 이르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들은

케인스의 옆 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공화당 막론하고

모든 정치 세력들이

정부가 시장을 제어하고

증세와 복지를 통해 평등을 증진

상식으로 여기던 시절

이 정도 쯤 돼야

진보가 뉴 노멀이다 

할 수 있어

진보와 보수가 복지로 경쟁하는 세상

이걸 거부하면 어던 세력도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

닉슨이 진보적인게 아니라

평소 공화당 철학대로 하면

대통령 할 수 없는 세상

한국의 진보는 미국처럼

36년 중에 28년 쯤 집권해야

8년 쯤 정권을 내줘도

절대 복지를 없애고

재벌 뒤를 봐줄 수 없는 세상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

택도 없는 이야기

기득권은 민주진보진영 아닌

재벌과 보수에 있어

언론지형도 그대로

여전히 감세와 복지 축소 주장

여전히 30% 이상의 지지

한국에서 진보가 뉴 노멀이다...?

전혀 맞지 않다

민중들의 뜨거운 투쟁과 헌신으로

진보가 뉴 노멀이 됐다고 해도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우파 경제학계 수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1899년생,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시장이 만능이다 주장

신자유주의자들의 우상

마가렛 대처가 스승이라 생각

공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파괴

1974년 케인스시대, 복지의 시대

1950~60년대 보수의 거장인 하이에크가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하이에크가 누구야?

"만약 하이에크가 노벨상을 못받았다면

지금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유로 노벨상을 먼저 받고

그 상 덕분에 

영향력을 키운 학자

거대한 진보의 시대

하이에크 같은 시장주의자의

학문적 업적이 인정될 분위기 아냐

2차 대전 직후 1947년

뜻이 맞는 보수 경제학자를

몽펠르랭 마을에 모여 조직 결성

몽펠르랭에서 엄숙한 선언

케인스의 시대에 찬성하지 않는다

반격해야 한다

우리는 힘이 약하다

보수경제학자들은 힘을 기르자

이 모임 힘을 기르는

핵심세력이 될 것이다

세계 보수경제학자들의 심장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신자유주의적 경제전략 연구

낙수효과 등 여기서 만들어져

미국과 영국, 특히 영국에 큰 영향

학계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명성을 서로 드높여가

1969년 노벨경제학상 만들어져

1974년 하이에크(몽펠르랭 창립멤버)

1976년 밀턴 프리드먼(창립멤버)

1982년 조지 스티글러(몽펠르랭 멤버)

1986년 제임스 뷰캐넌(몽펠르랑 멤버)

1988년 모리스 알레(몽펠르랑멤버)

1991년 로널드 코드(몽펠르랑멤버)

1992년 케리 베커(몽펠르랑멤버)

2002년 버논 스미스(몽펠르랑멤버)

2013년 라스 피터 한슨(몽펠르랑멤버)

무려 9명이나 노벨경제학상 수상

9명중 7명이 고작 18년(74~92년) 사이에 다 수상

특정 정파 소속 학자 수상자 배출?

노벨상 위원회가 신자유주의 산하 조직?

30여년간 이어진 끝이 안보일것 같은

진보의 시대

보수경제학자들은 와신상담(지하조직)

노벨상을 활용해

저명한 학자의 반열에 올라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

신자유주의 40년 시대 열어

진보가 뉴 노멀이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갈길이 멀고 적폐는 여전

국제적으로 간단하지 않은 보수

돈줄이 있고 경제학자를 만들어내

우리가 꿈꾸는 세상

진보가 상식인 세상

선거 4번 승리로

진보가 주류니 진보가 뉴 노멀이니

조금 위험한 이야기

갈 길은 아직 많고

설혹 도달했다 하더라도

역사를 되돌리려는 세력에

끊임없이 맞서야 해

“진보가 한국의 주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경제적 해석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0-05-03 12:09:35

수정 2020-05-04 0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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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끝난 뒤 보름이 지났다.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2016년 총선 이후 범 진보진영이 4연승을 거둘 정도로 진보가 강세를 보였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보가 다수이자 주류인 것이 새로운 상식, 즉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시각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물론 많은 민주시민들이 진보가 뉴 노멀인 세상을 바라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지금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

진보를 뉴 노멀이라고 부르려면

경제적으로 봤을 때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진보가 주류였던 시대가 딱 한 번 있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가 바로 그 때다. 이때 자본주의 진영의 리더였던 미국은 강력한 복지정책을 바탕으로 ‘대(大)번영기’로 불렸던 호황을 겪었다. 유럽 역시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막강한 복지정책을 펼치며 ‘영광의 30년’을 누렸다.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등장 이후 강력한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면서 복지국가의 꿈을 키웠다. 대공황 이전 1%에 불과했던 최고 소득세율은 91%(오타 아님!)까지 치솟았다. 민주당 정부는 증세와 복지라는 두 날개로 미국 경제를 유래 없는 호황의 시대로 날아오르게 했다. 그 결과 루스벨트 등장 이후 미국 민주당은 9번의 대선에서 초유의 5연승을 포함해 7승 2패라는 압도적 성적을 남겼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맹주였던 영국은 1942년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발표한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를 바탕으로 인간의 한 평생을 책임지는 복지 사회를 설계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의 원조가 바로 이때의 영국이다.

유럽 각 나라들은 ‘복지정책의 바이블’로 불렸던 베버리지 보고서를 베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유럽 역시 강력한 복지와 증세를 바탕으로 영광의 30년이라는 눈부신 경제 전성기를 누렸다.

미국 대선에서 2승 7패로 몰렸던 공화당을 구원한 인물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리고 닉슨은 대통령이 된 후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고 선언했다. 케인스주의란 증세와 복지를 축으로 경제를 운영했던 민주당의 경제 철학이었다.

그런데 공화당 대통령이 이런 진보 경제학의 지지자임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로 치면 홍준표 당선인이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이제 우리는 모두 소득주도성장론의 지지자다”라고 선언하는 꼴인데, 당최 상상이 안 가는 일이다. 이는 증세와 복지를 포기하는 순간 절대로 대선에서 이길 수 없는 정치 지형이 형성된 덕분이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달 15일 오후 국회도서관 선거상황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당대표직 사퇴를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그래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자신의 책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리처드 닉슨에 이르는 미국의 모든 대통령들은 케인스의 옆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라고 적었다. 루스벨트나 해리 트루먼, 존.F. 케네디나 린든 존슨 같은 민주당 대통령뿐 아니라 공화당 소속 군인 출신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리처드 닉슨까지 모두 케인스의 숭배자였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는 돼야 “진보가 새로운 상식이고 주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강력한 정부가 시장을 제어하고, 복지를 늘리며, 세금을 더 걷는다. 그리고 어떤 보수적 정치 세력도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10번의 선거에서 진보가 8번쯤 이기고, 두 번쯤 정권을 보수한테 내줘도 증세와 복지의 원칙은 꺾이지 않는 세상, 그 어떤 정권도 민중보다 기업을 우선하지 않는 세상이 돼야 “진보가 뉴 노멀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그런 세상과 거리가 멀다. 아직도 기득권은 재벌과 보수언론,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에게 있다. 미래통합당의 그 누구도 “세금을 더 걷고 복지를 강화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30% 이상의 지지를 얻는다. 그래서 “진보가 뉴 노멀”이라는 말은 한국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진보가 뉴 노멀이 된다 한들…

한 가지 더 주의할 점이 있다. 만약 세상이 변해 진보가 뉴 노멀이 되고, 진보 안에서 다양한 의견이 서로 경합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진보가 주류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는 진보의 전성기였던 1947년, 제네바 호수가 내려 보이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몽펠르랭(Mont Pelerin)에서 자신과 견해를 같이하는 학자들을 모아 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 MPS)다.

이 조직에 참여한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하이에크가 직접 고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진보의 전성시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시대를 준비했다. 이들의 머리에서 1980년 이후 세상을 장악한 신자유주의 이론의 기틀이 다져졌다.

1969년 노벨 경제학상이 만들어진 이래 이들은 연대를 굳건히 하며 학계를 장악해 나갔다. 1974년 당시로는 무명이었던 하이에크가 이 상을 수상한 이후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제임스 뷰캐넌, 모리스 알레, 로널드 코즈, 게리 베커, 라스 피터 한슨 등 이 단체 소속 학자 9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휩쓸었다.

월가와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으로 상징되는 국제 금융자본도 이들을 지지했다.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영국 수상으로, 이듬해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이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완성했다. 신자유주의의 추종자였던 영국 수상 대처는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이에크에게 편지를 써서 그 답을 구할 정도로 하이에크의 추종자였다.

2017년 이 단체가 서울에서 총회를 열었는데 당시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법들은 반(反)법치적이며 경제자유를 유린한다 ▲대기업을 차별하는 차별입법을 금지하라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시장의 자생력을 믿어라 등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진보의 압도적 전성기였던 1947년 시작됐다. 대한민국 보수가 하도 허접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수를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국제적으로 보수는 전혀 허접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자본의 열렬한 지지와 돈이 있다. 그들은 어떤 순간에도 시장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자들의 유토피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혹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뉴 노멀이 된다 한들 방심은 금물이다. 진보의 뉴 노멀은 그 어떤 민중들도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강력한 복지국가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런 사회에 시비 걸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아주 멀고도 험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