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 보수의 기본소득, 그 형편없는 철학에 대하여

2020. 6. 7. 20:45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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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김종인과 보수의 기본소득, 그 형편없는 철학에 대하여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0-06-07 15:55:58

수정 2020-06-07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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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연일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는 중이다. 그는 4일에도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래야 국민의 안정과 사회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단다.

그 당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한 모양인데 재미있는 것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반응이다. “뭔 개소리냐”라며 게거품을 물 법도 한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특히 『중앙일보』는 1일자에 ‘통합당이 기본소득 논의 주도를!’이라는 칼럼(전영기의 시시각각)까지 실었다.

반대가 아니고 찬성인 것도 신기한데, 그것도 “우리가 주도하자”고 나선 셈이다. 『중앙일보』는 회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여야 포퓰리즘 경쟁이 돼선 곤란하다’는 제목으로 얌전하게 반응했을 뿐 극렬히 반대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등은 예상대로 김종인 표 기본소득에 게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이 신문들의 다른 기사 반응은 그렇게 격하지 않다. 비교적 담담하게(!) 기본소득 논의를 소개하거나 분석 중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 보수가 본격적으로 기본소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뭘 준다”는 주장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던 자들이 이런 얌전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멸망의 입구에 선 그들에게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수의 기본소득, 무엇이 본질인가?

경제학적으로도 기본소득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보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의 우두머리 격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기본소득을 상당히 강력하게 지지했다. 실제 그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제도를 설계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기본소득과는 다르지만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적인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파격적 제도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대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도 기본소득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누림으로써 정부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이상적이다”라며 기본소득을 옹호한 바 있다.

왜 보수가 기본소득을 지지할까? 보수 시장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혐오한다. 특히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극도로 증오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국가란 국방이나 맡으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 채(심지어 국방도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얼빠진 보수 경제학자도 있다) 찍 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본소득을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국가가 나서서 이것저것 복지제도를 설계하지 말고, 기본소득 같이 간명한 제도로 복지를 다 퉁친 다음 국가는 찌그러져 있으라”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일괄적으로 돈을 지급하는 것이니 이것만 있으면 다른 복지도 다 없앨 수 있고, 국가의 시장 개입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보수의 기본소득 철학은 “국민이 귀찮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국민들이 귀찮아 죽겠으니 어떻게든 처리는 해야겠는데, 복지제도를 설계하자니 시장이 망가진다. 그러니 이들이 기본소득을 들고 나온다.

한국의 보수는 이에 더해 멸망의 문턱에 선 자신들의 구세주로 기본소득을 여긴다. 김종인 발 기본소득은 “우리도 돈 뿌릴 줄 안다. 그러니 우리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한국 보수의 기본소득은 “국민이 귀찮다” 버전에다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의 표가 필요하니 돈으로 표를 사겠다” 버전을 더한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의 안중에는 국민의 삶이 없다.

‘무슨 돈으로 할 것인가?’가 다르다

물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어차피 돈 주는 것은 똑같고, 진보도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다른 중복되는 복지를 없앨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진보의 기본소득은 국민이 귀찮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삶 그 자체에서 출발한 철학이다. 철학이 다르면 제도가 달라지고 운영 방식이 달라진다. 뭐가 다를까? 결정적으로 ‘무엇을 분배하느냐?’가 다르다.

진보 기본소득의 철학은 ‘인간은 누구나 온전히 살아있을 권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권리는 ‘누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자산’을 재분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살아있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인류 모두가 거뜬히 살아있을 만한 공동의 자산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김철수 기자

그렇다면 무엇이 인류 공동의 자산인가? 대표적인 것이 자연으로부터 형성된 자산, 그리고 인류 공동의 지식으로부터 형성된 자산이다. 자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당연히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수백 만 년 동안 누적된 인류 지식을 기반으로 형성된 재산도 당연히 공동의 것이다.

그래서 진보 기본소득의 재원은 토지 불로소득과 천연자원으로부터 형성된 자본소득, 인공지능으로 벌어들인 자본소득에서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지식은 당연히 인류 공동의 것이다. 알파고가 혼자 바둑을 배운 게 아니지 않나? 수억 판 누적된 인류의 지식을 조합해 그 놀라운 바둑 실력을 키운 것이다.

부자들이 부당하게 대를 이어 상속시킨 재산도 당연히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그런 자산은 국가가 압류해도 누구에게 나눠줄 것인가를 특정하기 어렵다. 친일파 재산을 환수했다면 그건 국민 공동의 자산이라는 이야기다. 이 재산도 당연히 기본소득의 재원이다.

그래서 진보 기본소득의 재원은 토지불로소득, 자원을 독점한 자본소득, 인공지능으로 축적된 자본소득, 그리고 그 외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부유층의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한다. 반면 보수는 재원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기껏 하는 이야기가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를 더 걷자고 말한다. 부가가치세는 부자나 가난한 민중이나 똑같이 내는 세금이다. 이런 세금을 재원으로 삼아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철학의 형편없음에 대하여

그래서 보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돈으로 기본소득을 할 것인가? 이건 당신들이 늘 우리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그럼 너희에게는 답이 있냐?”고 얼마든지 되물어도 좋다. 우리에게는 답이 준비돼 있다.

가장 먼저 종합부동산세와 토지세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땅은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공동의 자산이니, 땅에서 얻은 불로소득은 당연히 인류 모두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친일파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 친일파 재산의 뿌리는 적산(敵産), 즉 적이 무단으로 점유한 우리 민족의 재산이다. 적이 무단으로 점유한 재산을 찾았다면 그건 당연히 민족 공동의 것이다.

불법, 편법 상속으로 형성된 재벌들의 재산도 당연히 기본소득의 재원이다. 분명히 불법과 편법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너희들의 것이 아닌데, 그걸 또 딱히 누구의 것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 재산은 민중들 모두의 것으로 봐야 한다.

로봇세 등 인공지능으로 인한 자본 이익에 대대적인 과세가 있어야 한다. 인류 공동의 지식을 기반으로 형성된 재산이기 때문이다. 로봇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자본가들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니 보수들도 이에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동의할 준비가 돼 있나?

철학이 다르다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보수의 기본소득은 “징징거리는 국민들이 귀찮으니 간편하게 시혜를 베풀자”는 차원이다. 그래서 보수의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민중들 간의 어떤 활력 있는 연대도 부정한다. “자, 먹고 살게 해 줬으니 그만 징징거리고 시장에 복종해”라는 메시지일 뿐이다.

하지만 진보의 기본소득은 인간이 살아있을 권리의 선언이니 그 후에도 더 나은 인간의 삶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그 권리를 인정한다. 공동의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회적 연대의 복원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의 목적이 ‘시장의 보호’인 보수의 기본소득은 조세 저항이 생기면 즉각 축소된다. 부자들이 “나 그 돈 못 내겠어”라고 버티면, 그들의 입김에 제도가 춤을 춘다. 하지만 그 목적이 ‘국민이 자주적으로 살아있을 권리’인 진보의 기본소득은 그럴 리가 없다.

보수의 기본소득은 모든 복지제도를 무조건적으로 폐지하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 국민들의 삶을 보장하는데 충분치 않다면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의 권리이지, 국가가 국민에게 던져주는 몇 푼의 떡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는 2016년 서울 총회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이 복지를 축소시켜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취약하거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상황을 악화시킨다면, 기본소득이 복지와 사회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멸망의 문턱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기본소득을 꺼낸 한국 보수의 심정을 이해는 한다. 지금까지 그들이 해 온 짓을 보면 그 논의가 별로 잘 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좋다. 이렇게라도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한다면 나쁠 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국민이 귀찮아서, 혹은 표가 필요해서 떡고물 던져주듯 던져주는 기본소득과, 사람의 자주적인 삶에서 출발하는 기본소득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강남 벨트 출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21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한 일이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법안을 제출한 거란다. 그래서 무슨 돈으로 기본소득을 한다는 건가? 배현진, 태영호 두 의원의 개인 재산으로 할 건가? 앞뒤 안 맞는 웃기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는 표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시장을 보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라는 고백부터 하라. 그게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