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3~25강

2022. 9. 4. 14: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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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삼성과 삼무자성이 어떻게 중도로 이끄는가?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3강]

용수 개공중도론 후배의 오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대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 자기 마음을 경험한다 -인식의 한계와 오류는 상식
이분법 인식의 틀(인식필터)을 바꾸지 않는 한 뱀이 아무리 물을 먹어봐야 독이다

전오식(감각)은 철저히 대상이 있어야 인식이 일어남

의식은 대상이 없어도 인식가능(우뇌형인간 기억, 좌뇌형 인간은 인식 불가)

변계소집은 인식대상과 화합하여 일어남 그 인식대상이 의타기성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인과의 연속으로 이 자리에 왔다. 만물은 주관도 포함
삼성이 있나보다 착각

컵을 보면 온갖 헤아린 결과들이 진실이라 생각 그것은 의타기성에 깃든 마음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 상이다

아인중수상+법상+비법상=6상=온갖 경험들이 상이다

허상의 근거=이걸 경험하는가/마음을 경험하는가 이게 실상이면 마음은 허상

자기 마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하고 대상을 보고 있다

의타기성을 대상으로 변계소집하여 상을 만든다

의타기성은 물자체를 논하는것(존재론) 물에 비친 마음을 논하는 것(인식론)

변계소집은 경험속에만 있고 실체는 없다는 것이 맞다

의타기성은 물자체인데 없다(물론 물리학 발달하면서 없다 이야기할 수 있지만=공)라고 이야기하면 상식선에서 희론이 된다

있긴 있는데 생각방식과는 다르게 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지해서 연기적 존재이다

의타기에서 기가 생한다라는의미

 

인식틀이 사라지면 (자성 자체가 업어져)

변계소집은 상(생각=인식, 심식)을 즉 마음문제(경험)를 논하는 것

의타기성의 생은 주관 객관대상을 포함한 만물 물자체(존재)를 논하는 것

원성실성은 승의 무성일때 도달

용수보상은 상을 모두 희론이라 함 이 희론은 파사의 대상 파사하면 원성실상이 드러나는데 그걸 중도(현정)라한다

파사 수행을 통해 승의무성을 통해 일체만법이 제법실상으로 경험된다

내가 보는게 틀렸다 보는게 승의적이다 틀렸으면 새로 다시 봐야

즉비->연기->시명(잠정결론)
틀렸다는 것을 아는게 지혜의 시작이다

경허스님 나이들어 일반 상식선에서 의아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 술마시고 희롱하고

추운 날 여인이 문 두드려 들어오게 하고 사미보고 밥가져오시라 하니 그 사미가 주지스님께 일러

부르기 전에는 방근처 오지 말라 안그래도 소문이 이상하게 났는데

이제는 절에 외간 여자까지 들이는 구나 산문에 소문이 다 나

산문의 여인은 두눈뜨고 못본다 스님들 다 몰려와

경허스님이 나가시든지 여인을 내보내시든지 압박

내 복이 없는 거 같으니 내가 나가겠다 하는데 여인이 나와

나병환자의 여인이었다 죄송합니다 겨울에  버려져서 오갈데 없고 얼어죽을거 같아서 왔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 본적 이없다 상처진물 닦아주시고 밥도 먹여주시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셨는데

이제는 스님께 피해를 드릴 수 없으니 제가 나가겠습니다

경허스님은 실제로 인연 없는것 같다며 가셨다

변계소집성을 절대 무시하면 안된다 그 스님들이 내가 보는 게 허상이다라는 걸 안배웠을까요

자기가 본게 맞다라는게 끼어버리면 마치 귀신이 씌운 것처럼 그동 안 배웠던 모든 교리, 진리 가르침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내가 본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스님들도 그러할진대 일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원성실성을 볼거면 변계소집성을 걷어내야돼

허황된 꿈 꾸지 말고 변계소집성 걷어내는 걸 목적으로 수랭을 해야

한번 맞추고 한번은 틀려 확률이 반반이어도 사람들은 안믿어 굉장한 확률이어도 틀리는게 반복되면 믿지 않아

실수를 하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틀리지 않으려고 하는게 멋진 삶입니다

실수 하지 않는 다는 건 내 이익을 보존하고 손해를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고집부려서 하는 실수는 나와 남을 동시에 베어버려

이때는 이렇게 말고 저때는 그렇게 말한다고 하시는데

애기때 옹알이 한다고 80대에도 응애하며 옹알이 해야한단 말인가

즉비에서 멈추는게 아니라 즉비만 하면 자존감이 낮추어진다

틀렸으면 올바로 보기 위해서 관찰한다 입체적으로 보고 열린마음으로 보고 낯설게 보고

안달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르는 것처럼 봐야돼 그래서 나온 결론도 잠정결론으로 봐야

 

유식가에서 말하는 중도의 논리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4강]

중도-부처님의 의식상태-어디에도 사로잡히지않은 상태이므로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다

 

공가중

촉감의 대상이 되는 마음을 경험

정유=비공, 이무=비유

진유상무

반대되는 약을 주어서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벗어나 있다 어떤 의견이든 선택할 수 있다

상무= 이분법의 결과물은 없다

어떤 진실이든 사로잡히면 함정->변계소집=전문가의 함정

어디에든 사로잡히지 않아야 날 수 가 있다(양쪽에 빠지지말고 자유로워져라)

진리는 대문자D, 만물은 소문자 d를 쓴다(결과-화랍물)
설일체유부(구성의 원리 구성물)
3전12행상(교리)
도리세속=세간승의
증득세속=도리승의
승의세속=증득승의
비교급으로 한단계씩 수승한 것이 진제
의언중도에서 이런중도

컵=컵상 우기는 상태:변계소집

컵=의타기 화합물

컵=화합물을 디테일하게 보는 것

컵=변계소집을 녹이는 실천수행

컵=수행의 성과물마저 아바타로 보는 것(희론=독)

컵=무분별지로 드러나는 것(법문=우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
인식틀 전환(의타길르 바라보는 관점이 변계소집에서 원성실성으로)

원성실성은 찾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현현)

애쓰는 대상은 변계소집에서 벗어나는 것

변계소집을 안다(즉비)=>위빠사나 관찰=>시명잠정결론

 

부처님 법맥의 흐름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5강]

천태지자 스님은 중생눈에도 제법은 실상이다 싱상의 완성만이 목적
실천의 지도가 사상적 중도이다
공속에 가와 중이 있고 가속에 공과 중이 있다 삼제가 따로 있지 않으니 다툴 필요 없다
대립을 끊아 버리고 화해 파립은 하나다=삼제원융관법(하나의 의견에 세가지 대입=다한민국은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