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0~22강

2022. 8. 20. 16: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학개론

728x90

중관학파의 실상론을 통한 제법실상의 경험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0강]

있는 측면
없는 측면
제법실상
나는 다섯손가락-색수상행식

불 타오른다(둘을 나누어서 주체와 작용으로 있는 것처럼)

꺼진 불은 타오른다-꺼진불은 더 이상 불이 아니다

타는 불이 탄다-중복의 오류

불과 탐은 쌍으로 의존적 둘이 나디-연기공식

무아의 나라 캐치프레이즈-주체는 없지만 경험은 있다

있는게 아니다라는 중도-하나의 편견으로부터 자유-언어도단
있는게 아니다 편견이 다한다-심행처멸-모든 편견이 다하다
편견이 들어갈 자리 없다-중도의 잘에 머무른다-중도무소득=제법실상

알 것같은 순간이 온다-다시 깜깜해진다

개념이 없는 경자-걷는 자리에 연꽃-걷는 행위가 설법-모든 결과물이 진리=이분법의 필터가 제거

전달통로를 깨끗이하다

전달통로에 오물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물이 들어가도 오물

신비주의자-자아없애려 노력

허상 실상의 구분이 끊겨져(머리 디친 멍청이가 아님)

삿된 이야기 삿된 경험 계속

깨달음은 이본법자동시스템을 Off한 것-자유로워짐

속제 개몀 쓰기도 진제 안쓰기도 자유로워(자동이 수동으로 바뀌어)

자동을 끊을  수 있으면 자유

못끊으면 구속 속박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해탈

언어가 끊어지고 마음이 다해서 제법실상을 보는 자리(여거-공즉시색) 이분법의 세계로 돌아와(가를 세워)중도를 말한다(여래-색즉시공)
더 적극화-사로잡힌 개념

 

 

중관학파를 비판하는 유식학파의 중도관은?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1강]

유식학파=중도에 대한 반작용-유무공중도
헤라혀짐=공이다,입구에서 멈추어버림
파사의 용도는 현정
공을 좋아하는 강조점에서 오는 것에 대한 반작용

EBS불교입문학 원빈스님 평가

교양없다(글도 못쓰고 한자등 안쓴다)-못한다

현대적 쥬석가-잘한다

둘다 허상 그런 측면 있지만 방송용 이미지 메이킹일수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강의중 아닐때, 사람이 있을때)

모델링-취사선택
틀린 걸 알아야 관찰=즉비공식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것(경험과 지식)은  파사의 대상

평가는 헤아림(변계)이고 집착해서 말한 것

공가중 골고루 이야기하자는
잘못쓰면말못보면 변계소집, 파사되면 원성실

의타기성에서 의타기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차안에서 피안

피안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 변계소집성)이분법의 망상만 벗어나면 된다)

이분법, 망상,근봄무명, 어리석음을 벗어낸느 과정

벗어내는 과정에서 중관학파에서는 중도관, 유식학에서는 연기관

전공이 없으면 잘배우고 활용(중립적이고 다활용가능)-존공에 생기면 전공에 묶이고 집착하고 그것으로 해석

넓고 얕게 본다

차안 피안의 의식틀(중간-선악과 근본무명)이 친리추구 틀 똑같다 이름만 다르다

차안 피안은 한공간 공간적인 차별이 없다(공간을 가르는 가림막만 있을 뿐)=가림막 제거과정

의타기성=원성실성인데 변계소집성이 가리고 있다 분별해서 보는 것은 변계소집

 

 

유식학파의 중도관인 삼성과 삼무자성이란? [원빈스님의 불교학개론 22강]

 

둘다 중도 연기를 말하지만 성격아 좀 달라

모든 벽(개념)을 무너뜨리는게 중관

모든 벽(개념)을 세우는게 유식

조건에 의지
직접적인 원인은 인, 증상연은 인연 무한(인드라망), 감각대상인 욱경소연연,  사슬등무간연

보는 마음의 허와 실, 대상의 허와 실은 다르다

의타기성을 객관 대상으로 전제하면 대상은 연기성이다

마음에 비친상이 변계소집

움직임(객관대상)  부동(불이)-움직였단느 집착에서 벗어났다(주관적 의식은 부동 분별이 없는 게 맞다)

말했는데 말한 바가 없다

들었는데 들은 바가 없다

먹었는데 먹은 바가 없다

움직임(윈도브러쉬)으로 부터 자유로워져 인식 못하는 바보가 아니고 인식이 안될 수도 있다(부동)

움직임은 계속 즉 무상변함없다-
개념은 변화 없는 독립적인존재를 전제

실제는없는 1이라는 개념을 만듬 실제의 그림자로 산수로 발전

변계소집성에 빠지면 무상고 무아를 모른다 죽을 거를 모른다

누구나 평생은 사는데 영원히 살 것처럼 이야기한다

변계소집에 빠지면 항상한 줄 안다-그래서 무상고 무아인 의타기를 봐라

재미있는 것은 원성실성 불이의식속에서도 변화가 없다

변계소집은 변화를 인식 못하는 거고

원성실은 변화에서 자유로워진거

세상은 변화한다(만물은 의타기) 그런데 제법실상에서는 뱐화의 관념 자체가 없다

바람은 불고 눈은 내리지만 변화로 인식을 안할뿐

그래서 중생구제 입장에서는 즉비공식 아닌 시명공식을 이용한다

악취공에 빠지면 진리를 현현할 수 있지만 중생구제를 못한다

분별의 인식을 써 말한다

중생은 경험인식전 먼저 변계소집(분별)이 일어난다

성인은 먼저 경험(무분별지, 부동의식 )을 해 분별을 후에 쓴다

분별 자동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과 분별을 안하는데 필요에 의해 쓰는 것은 다르다

대승에서 저런 것이 실재한다느 개념이 없다 대비해서 쓰는 것

변계소집성에서 대비되는 의식 상태로 쓰는 것(비가 폭우 단비)

무상고무아부벙은 상락아정을 서로 의존해서 존재하는 개념

움직임은 있는데 오늘 밤 뭐먹을 까 변계에 집착하는 동안 변화가 인식안된다 항상한 거 같아

변계소집에 빠져 있는 동안 락이라고 생각해 자아내가았다고 생각해 오욕을 깨끗하다 생각해

중생도 상락아정에 착각에 빠져있어

깨달은 후에 상락아정 진아 대아는 없는데 무아인 상태를 이름 붙인 것

번계소집의 경험, 원성실의 경험의 대상 모두 의타기=공가중

의타기성이 중도이다

변계소집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망상,허상이다=근자감은 우상숭배(욕이 진실이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경험들은 허상에 가깝다

파사가 극단적이라 용수보살은 속제에서는 욕한거 맞다

허상을 보고 옳다고 하는 것은 가망이 없다  병걸린 사람이 병 안걸렸다고 하는 것과 같음

즉비는 신통은 개발 안되지만 지혜는 개발

차라리 내가 다 틀렸다고 보는게 훨씬 확률이 높아(2보전진을 1보 후퇴)

너의 마음속에만 있다
특정한 사건(조건)이 없으면 있는 것으로 여긴다
불가상의는 신비가 아니다 이분법의식으로ㄴ느 절대 볼 수 없다 중생의 뜻으로는 없지만 리치로 있다

대승기신론 진여는 언제 확인 할 수 있느냐 깨치면 확인할 수 있다(언어도단, 심행처멸)

개념에는 실체 없다
컵이 안보였다 보이면 생했다 여김
즉비, 연기의 방법으로 무분별에 도달

용수는 중도관이므로 개념이 사라지지만 유식은 세밀인연관이므로 개념을 세우겠다는 것

중도관은 생각이 어디에도 들러붙지 못하도록 만드는 상태

초기불교에서 연기를 관하는 것이 사성제3전12행상이다

불편항 마음이 있으면 ->인연, 중도, 사성제관

사성제는 질문지;다

구부득고-어떤 갈애원인 찾기-벗어날 수 있나-수행법 처방

용수중도편(즉비), 세친연기(인연)편도 아니고 부처님사성제편이다

누구나 쉽게 연기를 관할 수 있는 공식이 사성제다

틀렸다는 걸 즉비를 알아야(우상숭배를 그만둬야)-허상망상숭배

망분별 계속하면 망한다

시명의 진리(즉비공식, 연기공식, 중관공식, 사성제공식=즉비시명)

막가는 생각을 버린다-불편해지는 순간 공식을 적용

시비가 아닌 고집을 부려서 생긴문제-즉비

자기에 맞는 중도를 해야(문지표 사성제 기초편)

망분별은 망하고 무분별은 안되고 진분별부처님공식 연습하면 무분별에 가까워진다

무분별지는 쓰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