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와 개화 그리고 불교

2007. 6. 9. 15: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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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와 개화 그리고 불교. 衞正斥邪 바른 것을 지키고 그릇된 것을 물리침. =유교 인륜대도 邪=불교 도가. 성리학 주자학=. 불교 양명학=. =명 조선<정통>. =청 서양<이단> 배타적 수구적 발상. 불교의 破邪진공 顯正묘유=분별 망식이 제거되면 진실이 드러난다. 

 

1860:통상반대운동-대원군 쇄국근거 1870년대:개국반대운동-개국파 1980년대:개화반대운동-개화파 1890년대:항일의병운동-친일파

 

위정척사파가 주장하는 사대와 자주 사대:유교의 인륜대도를 구현한 중화문명을 섬기는 것. 자주:중화문명의 계승자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開는 開物成務 만물의 도리를 깨달아 일을 성취시킨다<주역> 化는 化民成俗 백성을 교화시켜 한 시대의 풍속을 이룬다<예기>에서 나온 말로 개화의 전통적 의미는 개물화민으로 물질문명의 발전이며 풍속과 제도의 변화를 뜻한다<황현>

개화의 근대적 의미 문명개화 Enlightened civilization로 서구문명의 수용에 의한 근대화<1880년 조선에 도입>

개화의 정의 근대 서구문명을 수용하여 기술의 발달과 제도의 개혁을 추구하는 것

서양학문=실용적 발상<실학>+혁신적 발상+개방적 발상<불교>

 

온건 개화파 유교기반. 중심인물 김윤식 어윤중 신기선 유교사상의 기반 위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중국의 양무운동을 본받아 점진적 개화를 추진했다. 개화는 時務 시급한 일이다 인지. 하지만 東道西器 기본은 다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서양문물을 수용할 뿐이다.

급진 개화파 유교탈피. 중심인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유대치 이동인 유교사상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물 뿐만 아니라 제도까지 받아들이고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받아 급진적 개화를 추진했다. 西道西器 정신적으로도 서양이 뛰어나다 주장.

 

갑신정변 – 1884년 고종21 12 4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당이 청에 의존하려는 척족 중심의 세력을 몰아내고 청의 세력을 배제하여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혁신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일으킨 정변. 실패 청은 1500명 일은 150. 당시 인민평등권 주장. 중국의 변법운동보다 13년 앞선 것이다. 갑신정변은 민족주의적 개혁과 자발적 자주적 근대화를 기반으로한 정변이었다.

 

유대치<1831-?> - 주인 신분의 한의사로 불교신앙에 투철했으며 개화파의 중심인물들을 지도함. 유대치 거사는 경성 사람으로 이름이 홍기다. 호는 방박재이며 여여라 하기도 했다. 그는 선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 제 거사들은 유재치를 따르면서 도를 물었다. 이들로 인해 한 때 선풍이 경성에 성행하게 되었다<이능화 조선불교통사>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은 모두 대치 문하의 뛰어난 이들로 일본으로써 청을 몰아내고 러시아로써 만주를 회수하여 청년중심의 신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들 윤곽의 이상이니 박영효 김옥균 등이 일본교섭의 선두에 선 것도 사실은 대치의 계획 중에 나온 것이고 세상이 개화당으로 지목하는 이는 대개 대치의 문인을 이름하였다<최남선 고사통>

김옥균이 유대치로부터 배운 사상의 감화 외에 특기해야 될 것은 대치의 불교신앙의 일면이다. 대치는 조선학자들이 의례에만 능하면서도 道念에는 관심이 적음을 개탄하여 김옥균 등에게 불교를 연구하도록 권하였다<김옥균전>

김옥균 서광범 등은 선도를 듣고 지혜로운 생각을 내었고 일본을 유람하며 당시 형세를 파악하여 혁신을 결의하게 되었는데 갑신정변은 그 결과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운 불교의 이치 평등대로 세상의 이치에 응용하고자 했다. 그 근원을 연구하는데는 실로 유대치가 있어 그들을 지도하였다 <조선불교통사>

김옥균의 은사 유대치 선생은 갑신정변의 패망을 알자 6일밤 집을 나와 산에 들어가 마침내 그 죽은 곳을 알지 못한다. 조선의 여명을 알고 독립당을 고취한 당년의 국사 대치선생이 돌아간 곳을 아는 자 없다. 혹자는 선생이 평소에 부처님을 숭신하였는바 당시 오대산 중의 천하명승 백운선사가 혹 대치선생의 변생 불제자가 아니었던가 말하기도 했다. 선생의 부인은 체포되어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김옥균전>

그는 스님이었지만 고리타분하지 않고 이렇게 진취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가신 곳을 알지 못한다.

 

이동인<1849-1881> - 부산 범어사 출신의 개화승. 유대치의 소개로 개화파와 접촉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세를 파악함. 국왕의 밀사로 한미수호조약 체결을 교섭하기도 했다.

이상 김종욱 교수의 척사와 개화 그리고 불교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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