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림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바로 하는 탁발(托鉢)

2009. 2. 27. 10:0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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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바로 하는 탁발(托鉢)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을까? 그들의 결혼식에 내가 간다면 나는 무슨 예복을 입어야 할까? 평생을 살다 삶을 마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에는 또 무슨 옷을 입어야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을까? 일반인들은 꽤나 신경을 쓰는 삶의 숙제이지만 나 같은 수행자에게는 한 방에 해결되는 아주 쉬운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흔히 ‘두루패션(?)’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계절 한평생 한 색깔, 한 모양의 옷 몇 벌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교의 수행자, 스님, 비구(니)의 삶이다.

비구란 말은 인도어 bhikku를 중국 한자로 옮길 때 비슷하게 소리 나는 대로 比丘라 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니(尼)는 여성을 뜻한다. 따라서 비구니는 여자스님이다. 비구는 또 필추(苾芻)라고도 하는데 역시 발음이 bhikku와 비슷한데다가 향내가 좋고

얇고 길게 자라면서 질긴 풀의 이름이기도 하다. 수행자는 뭘 잘 맛있게 먹지 않고 겨우 배고픔만을 면하도록 먹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는 데에만 온 힘을 다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가볍고 마음 또한 부드러워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 푸근한 얼굴로 대해야 한다. 또한 저 필추(苾芻)가 얇고도 길게 자라나는 것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참아내야만 비구라고 할 수 있다.

필추(苾芻)처럼 살려면 향내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가며 철따라 건강 검진 받고 자그마한 아픔이라도 몸에 생길라치면 약 먹고 수술하고 해서 건강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요즘 사람들은 생각함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비구가 되지 못한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수면실 앞에 ‘흑암지옥(黑暗地獄)’이라고 이름 걸어놓고 마음 닦는 공부에 열중하는 어떤 수행자가 그렇게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잠이나....이성에 대한 그리움이나....일 것이다. 그래서 비구는 얻어먹어야 한다. 얻어먹어야 맛있는 것만을 배불리 먹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먹꺼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또, 많으면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면서도 없어도 죽을 수밖에 없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먹꺼리이므로 그것을 제공하는 이의 고마움을 알도록 하기 위해 얻어먹어야 한다. 그렇게 얻어먹는 것을 탁발(托鉢)이라 한다. 탁발은 승려의 중요한 일상생활이며 중국 선종에서는 승려의 옷인 가사(袈裟)와 밥을 빌고 먹을 때 쓰는 그릇인 발우(鉢盂:또는 바루,바리)를 법을 전하는 신표(信標)로 써서 발우 자체가 승려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때 부처님의 제자들이 둘로 나뉘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이 어려우니 가난한 사람에게 밥을 빌어먹고 승려는 법을 설해주어 복을 나누어 주자고 하였다. 또 다른 이는 부자에게는 그런 기회가 적어지면 도로 가난해지니 부자에게 가서 밥을 빌자고

하였다. 그 때 부처님이 말하기를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복은 때가 되면 적어지고 작아지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리지 말고 그들에게 가서 평등하게 밥을 빌고 평등하게 법(法)과 복(福)을 나눠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일곱집을 다녀서 얻은 음식이

한 그릇이 되면 그냥 그대로 먹으면 되고, 한 그릇이 못되어도 더 이상 다니지 말고 얻은 만큼만 먹어야 한다고 하는 칠가식(七家食)의 전통을 초기불교에서는 지켰다.

그런데 여러 종교가 함께하고 있는데다가 인도,스리랑카,미얀마 등 남방불교 지역과는 달리

수행자를 우대하는 풍토가 자리잡지 못한 중국,한국,일본 등에서는 탁발이 쉽지 않다. 그런데다가 우리나라는 1948년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기독교인인 이 승만씨가 미 군정의 도움을 얻어 정권을 잡고 자신의 반대쪽인 김 구 등의 후원세력을 무력화 하는 방편으로 불교계를 분열시켰다. 그러면서 불교의 오랜 전통인 탁발을 금지시킨 것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탁발을 불법이라고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사이비 탁발승의 행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때의 빗물이 장강(長江)의 물을 사철 흐리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탁발이야말로 가장 불교적이며, 가장 승려다운 생활이라 할 수 있다.

법현스님:태고종교류협력실장,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대화위원,열린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