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할 뿐/현각스님

2009. 3. 23. 11: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728x90

 

 

 

오직 할 뿐/현각스님

 

                    - 부처를 쏴라>에서 발췌

 

 

숭산 큰스님의 스승이었던 고봉(古峰) 선사(1890-1961)는

당대 최고의 선승(禪僧) 중 한 분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스님들을

'게으르고 오만한 수좌(首座)하고 칭하며 이들을 가르치지 않은 걸로 유명했고,

기행과 예측불허한 행동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수행중이었던 젊은 시절, 고봉선사는 산에서 산으로 만행을 다니던 중

잠깐 들린 한 암자에서 일주일가량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은 신도 방문차 출타하였고 고봉 선사만이 암자에 남게 되었다.

그날 오후,

한 노보살이 과일과 쌀이 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길을 따라 암자에 왔다.

대웅전에 가니 고봉 선사가 마침 참선 중이었다.

"아이고, 스님.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부처님 전에 공양물을 올리러 왔습니다.

요즘 집에 우환이 끊이지를 않네요. 기도를 했으면 좋겠는데,

스님께서 좀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노보살을 슬픈 표정이었지만 매우 진지했다.

노 보살을 올려다 보며 고봉 선사가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보살님을 위해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고봉 선사는 집전(執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출가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선방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님들은 집전하는 스님,경전을 공부하는 스님, 참선 수행만 하는 스님 등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고봉 선사는 전통 염불 의식에서는 어떤 경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집전해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목탁 치는 법도, 절하는 시점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되뇌었다.

'아무 문제없어 걱정할 것 없어, 오직 할 뿐. 문제없어. 오직 할 뿐.'

 

막상 가사 장삼을 갖춰 입었지만 집전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던 고봉 선사는

무슨 경을 읽어야 할지 몰랐다.

일반적으로는 의식의 성격에 맞춰 천수경과 같은 경을 택하는 게 정석이지만

고봉 선사는 이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출가 전에 읽었던 도교(道敎) 경전을 기억해 내고는 기도를 시작했다.

목탁을 치며 큰 소리로 독경을 하다가 적절하다 싶을 때 한 번씩 절을 하면서

한 시간가량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 나갔다.

 

기도가 끝나자 노보살은 무척 기뻐하였다.

"스님, 감사합니다. 너무 자비로우십니다. 마음이 한결 편해 졌습니다!"

노보살을 고마움을 표한 후 집으로 향했고, 산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

신도를 만나고 암자로 돌아오는 주지 스님을 만났다.

"아이고, 보살님! 절에서 내려오시는 길이십니까?"

"네, 집에 우환이 들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러 갔어요. 고봉 스님께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저런, 안됐군요."

주지 스님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왜요?"

"고봉 스님은 염불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다른 스님이었으면 몰라도..."

"아닙니다, 아녜요. 매우 잘 하셨어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노보살을 쳐다보며 말했다.

"보살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기도는 의식에 맞춰 염불을 해야 합니다!

고봉 스님은 선승이라서 어떻게 집전하는지 몰라요.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스님이었다가 환속했던 노보살은 각종 염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고봉 선사가 도교 경전을 독송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과연 무엇이 옳은 염불입니까? 어떤 염불을 그르다 할 수 있습니까?

 고봉 스님께서는 훌륭하게 잘 하셨습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셨어요.

 글자나 말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가 중요하지요. 고봉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염불을 하셨어요."

 주지 스님이 이에 답했다.

"아무렴요, 맞습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요."

둘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갔다. 주지 스님이 암자에 도착하니 고봉 선사는 참선 중이었다.

"스님, 오늘 아랫마을 노보살님을 위해 기도를 해주셨습니까?"

"네."

"염불에 대해서는 도통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염불에 대해서 도통 모르지요. 그래서 오직 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전으로 염불을 하셨는지요?"

주지 스님이 물엇다.

"도교 경전으로 했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주지 스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라졌다.

 

 

 

숭산 큰스님께서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정진에 관한 이야기인데 참 흥미롭지? 찰나 찰나 '오직 할 뿐!' 이야

 오직 정진하는 마음으로 일심(一心)으로 '오직 할 뿐' 이라고. 생각에 집착하면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아니면 특별한 수행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도움이 안 돼.

 도교, 유교, 기독교, 불교, 어느 종교의 경전을 독송하느냐는 중요치 않아.

 청정한 마음을 지닐 수 있으면 '코카콜라,코카콜라, 코카콜라, 코카콜라....'

 이렇게 코카콜라를 외우더라도 상관 없어. 그러나 청정한 마음을 지니지 못하고

 입으로 외면서도 망념(妄念)을 따른다면 부처님도 구제해 주시지 못해.

'오직 할 뿐' 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무엇이든 100 퍼센트 하면 주체와 객체가 없어져.

 거기에는 안과 밖이 없어. 안과 밖이 이미 하나야.

 나와 대우주가 둘이 아니라는 말이야. 그 자리에는 생각이 붙질 않아.

 기독교 성경에 '너희는 가만히있어 내가 하나님이 됨을 알지어다.'

 라는 구절이 있거든.

 

 가만히 있는, 즉 고요함은 부동심(不動心), 다시 말해 몸을 움직이고,

 무엇을 하는 동안에도 추호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뜻해.

 주체도 객체도 사라져 마음도 완전히 고요한 상태야.

 이것이 바로 부처의 적정(寂靜)이지. 참선할 때 고요해져야 해.

 염불할 때도 고요해져야 해. 절할 때도, 먹을 때도, 말할 때도, 책 읽을 때도,

 운전할 때도 고요해져야 해.

 이것이 바도 부동의 마음, 즉 ' 오직 할 뿐' 이여,

 

 이걸 칭하여 정념(正念)이라 해."

 

 

* 숭산 큰스님께서는 고봉 선사로 부터 전법게(傳法偈)와 숭산(崇山)이라는

   당호(幢號)를 받아 이 법맥의 78대 조사(祖師)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