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法>을 전하는 요긴한 말씀 - 輯 배휴

2015. 11. 28. 20: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전심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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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法>을 전하는 요긴한 말씀 - 輯 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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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

 

몸과 마음이 자연스러우며 도에 통달하고 마음을 알아서 본원에 통달한 까닭에

사문samaṇa 이라고 일컫는다. 사문이라는 결과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지는 것

이지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지금 마음먹고 일부러 마음을 찾고 타인의 집에서

배워서 얻으려고 할 뿐이니, 어떻게 얻을 때가 있겠느냐?

 

身心自然 達道識心 達本源故 號為沙門。沙門果者 息慮而成 不從學得。

汝如今將心求之 傍他家舍 只擬學取 有甚麼得時?

  

한 마디 듣자마자 곧장 배움을 끊었다. ────────────────────

 

옛 사람의 마음은 날카로워서 한 마디 듣자마자 곧장 배움을 끊었다. 그러므로

배움을 끊어, 할 일 없이<為無> 한가로운 도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은 다만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문자文字의 뜻을 널리 구하는 것을 일러 수행이라고 하니,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하는 것이 도리어 가로막히는 것인 줄은 모른다.<元明照生所 所立照性亡>

 

오로지 많이 알려고만 하니, 마치 우유를 마시는 아이처럼 소화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삼승三乘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모양이니, 이들을 먹기만 하고 소화하지는 못하는 자라고 한다.

 

이른바 알고 이해하는 것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모두 독약毒藥이 되니, 모두가

생멸生滅 속에서 취하는 것이고 진여眞如 속에서는 이러한 일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왕의 곳간에는 이와 같은 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古人心利 才聞一言 便乃絕學。所以喚作絕學為無閑道人。今時人只欲得多知多解。

廣求文義 喚作修行 不知多知多解 翻成壅塞。唯知多與兒酥乳吃 消與不消都總不知。

三乘學道人皆是此樣 盡名食不消者。所謂知解消。皆為毐藥盡向生滅中取。

真如之中都無此事。故云我王庫內無如是刀

 

  

의지하거나 붙잡을 것이 전혀 없다면 일없는 사람無事人 이다. ────────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알음알이를 모조리 내버리고 텅 비워서 다시는 분별

없으면 곧 공여래장空如來藏이다. 여래장如來藏는 털끝 하나조차도 있을 수

으니, 이것이 곧 '있음을 쳐부순 법왕法王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이며,

 

또한 '나는 연등불燃燈佛이 계신 곳에서 얻은 법이 조금도 없었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단지 그대가 의식意識으로 헤아리는 알음알이를 비우도록 하기 위한 것

이다.

 

안팎의 의식을 남김없이 녹여서 의지하거나

붙잡을 것이 전혀 없다면 곧 일 없는 사람이다.

 

從前所有一切解處 盡須并卻令空 更無分別 即是空如來藏。如來藏者 更無纖塵可有

即是破有法王出現世間 亦云我於然燈佛所無少法可得。此語只為空你情量知解

但銷熔表裏情盡 都無依執 是無事人。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은 없다.<實無有定法> ──────────

 

삼승三乘의 가르침은 다만 근기에 대응한 약이고, 그때그때 알맞게 말한 것이고,

임시로 시설施設한 것이니 각각이 같지 않다. 다만 밝게 알기만 한다면 속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근기에 해당하는 한 가르침만 지키고 문자를 이해한는 데 머물러

서는 안 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여래께서 진실로 말씀 하신 바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선문禪門에서는 이런 방편의 일은 따지지 않으니, 다만 마음을 쉴 줄 알아

바로 멈추어서 다시 앞을 헤아리고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三乘教網 只是應機之藥 隨宜所說 臨時施設 各各不同。但能了知 即不被惑。

第一不得 於一機一教邊守文作解 何以如此?實無有定法如來可說。我此宗門不論此事

但知息心即休 更不用思前慮後。 


 

 

범부의 의식과 성인의 경계를 없애버리기만 하라. <汝但除卻凡情聖境> ────

 

물었다. 예로부터 모두 말하기를 '이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라고 하였는데,

            어느 마음이 부처인지요?

 

황벽이 말했다."그대에게 몇 개의 마음이 있느냐?"

 

질문:"범부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성인의 마음이 부처입니까?"

황벽:"어디에 범부의 마음凡心과 성인의 마음聖心이 있느냐?"

 

질문:"지금 삼승의 가르침 속에서 범부와 성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스님께선 어찌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황벽:삼승 속에서 분명하게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마음은

허망하다"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지금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있다고 집착하는구나.

 

을 실이라고 여기니, 어찌 허망하지 않으랴? 허망한 까닭에 마음이 미혹되

는 것이다. 그대가 다만 범부의 뜻意識과 성인의 경계境地를 없애 버리기만 한다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心外更無別佛>

달마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모든 사람이 다 부처라고 곧장 가리켜주셨다.

그대는 지금 알지 못하고서 범인에 집착하고 성인에 집착하면서 밖을 향하여

내달리니向外馳騁 도리어 스스로 마음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還自迷心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이 마음이 부처다'<即心是佛>라고 말한 것이다.

 

한순간 의식이 생기면 즉시에 망상세계에 떨어진다. 비롯함이 없는 예로

부터 지금 이 순간과 한결 같이 다르지 않았고 다른 법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等正覺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問從上來皆云 即心是佛 未審即那個心是佛? 師云你有幾個心? 云 為復即凡心是佛?

即聖心是佛? 師云你何處有凡聖心耶? 云即今三乘中說有凡聖 和尚何得言無?

師云 三乘中分明向你道凡聖心是妄 你今不解 反執為有 將空作實 豈不是妄? 妄故迷心。

汝但除卻凡情聖境 心外更無別佛。祖師西來 直指一切人全體是佛。汝今不識 執凡執聖

向外馳騁 還自迷心 所以向汝道 即心是佛。 一念情生即墮異趣。無始已來不異今日

無有異法 故名成等正覺。



도리가 있기만 하면 곧 이 마음과 달라 진다. <才有道理 便即心異> ─────

 

질문:스님이 말씀하신 '당장 그대로/이 순간'라 함은 무슨 도리道理입니까?

황벽:무슨 도리를 찾느냐? 도리가 있기만 하면 곧바로 본래마음卽心과 달라진다.

 

질문:앞서 '무시이래 오늘 이 순간과 다르지 않았다.'無始已來不異今日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도리입니까?

 

황벽:단지 찾기 때문에覓故 그대 스스로 그것과 달라지는 것이다. 汝自異他

       그대가 만약 찾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다름이 있겠느냐?  何處有異

 

⇒이미 다름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즉'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대가 만약 범부와 성인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대에게 굳이 '이 순간'

라고 말하겠느냐? 이 순간'' 이, 이순간'' 아니라면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니 만약 마음과 을 모두 잊는다면 누가 다시 어디에서 찾으려 하리오?

 

云 和尚所言即者 是何道理? 師云 覓什麼道理 才有道理 便即心異。 云前言

無始已來不異今日。此理如何? 師云 只為覓故 汝自異他。汝若不覓 何處有異?

云既是不異 何更用說即? 師云 汝若不認凡聖 阿誰向汝道即? 即若不即 心亦不心。

可中心即俱忘 阿爾更擬向何處覓去?

 

 

 얻었을 때는 안다고 말하지 말라. ───────────────────────

질문: 망상이 자기 마음을 가로막는다면, 지금 무엇을 가지고 망상을 없앱니까?

 

망상이 일어날 때, 망상을 없애려하면 그것도 역시 망상이 된다. 망상은 본래

뿌리가 없다. 다만 분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대가 다만 범부와 성인의 두곳

서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자연히 망상은 없으니, 다시 어떻게 없애겠는가?

 

털끝만큼도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纖毫依執, 이른바 '내가 두 팔을

다 버렸으我舍兩臂 반드시 부처를 얻을 것이 되니라고 한 것이 된다.

 

질문: 이미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다면 조사들 께서는 어떻게 이어받았습니까?

황벽: 마음으로 마음을 전했느니라.以心傳心

 

질문: 만약 마음을 서로 전한다면, 어찌하여 마음 또한 없다고 하십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不得一法을 일러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若了此心,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即是無心無法

 

질문: 만약 마음도 없고 법도 없다면 어떻게 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황벽:그대는 마음을 전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 얻을 만한 것이 있다고 오해

       하는구나.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심성心性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만하다.

분명히 얻은 것이 없으니, 얻었을 때는 안다고 말하지 말라.'

이 일을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여도 그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問妄能障自心 未審而今以何遣妄? 師云起妄遣妄亦成妄。妄本無根。只因分別而有。

你但於凡聖兩處情盡 自然無妄 更擬若為遣他?都不得自纖毫依執 名為我舍兩臂必當得佛。

 云既無依執 當何相承? 師云以心傳心。 云若心相傳 云何言心亦無? 師云不得一法 名為

傳心。若了此心 即是無心無法。 云若無心無法 云何名傳? 師云汝聞道傳心 將謂有可得也。

所以祖師云 認得心性時 可說不思議 了了無所得 得時不說知。 此事若教汝會 何堪也?

 

 

​ 여러가지 마음이 없고 도리도 없다. ──────────────────────

 

온갖 종류의 많은 지식보다는 구함 없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도인道人이란 일 없는 사람이니, 참으로 여러 가지 마음이 없고, 또 말할 만한

도리道理도 없다. 일이 없으니 흩어져 돌아가라.

百種多知 不如無求最第一也 道人是無事人 實無許多般心 亦無道理可說 無事散去。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면 모두가 삿된 짓 ───────────────────

 

그대가 다만 있느니 없느니 하는 모든 법을 벗어나기만 하면, 마음은 마치 태양이

허공에 있음에 밝은 빛이 저절로 그러하여 비추지 않아도 자연히 비추어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힘을 더는 일이 아니겠느냐?

 

이런 때에 이르러 깃들어 머물 곳이 없으면, 바로 온갖 부처의 행동을 하는 것이

며, 곧 '마땅히 머묾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깨끗한 법신 清淨法身이며, 이름 하여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이다.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그대가 많은 지식을 배워 얻고 힘들여 고생스럽

수행하며 풀섶로 만든 거친 옷을 입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더라도, 자기의 마음

을 알지 못한다면 모두가 삿된 짓이니 반드시 천마天魔의 권속이 될 것이므로,

 

이렇게 수행하여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你但離卻有無諸法 心如日輪常在虛空 光明自然不照而照 不是省力底事? 至此之時

無栖泊處 即是行諸佛行 便是'應無所住而生其心。此是你清淨法身 名為阿耨菩提。

若不會此意 縱你學得多知 勤苦修行 草衣木食 不識自心 盡名邪行 定作天魔眷屬

如此修行當復何益?

  

곧장 여래의 지위에 들어감 ──────────────────────────

 

지공誌公 화상이 말했다.

'부처는 본래 자기 마음이 만드는 것인데, 문자 속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으랴?'

 

비록 그대가 삼현三賢·사과四果·십지만심十地滿心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역시 다

범부와 성인의 분별 속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대는 '모든 행동은 무상無常

이것이 곧 생멸법이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諸行無常 是生滅法>

 

그렇게 수행한다면, 힘이 다한 화살이 다시 땅으로 떨어지듯이 내생來生에 다시

태어날 것이니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

實相門에서 단번에 곧장 여래의 지위에 들어감과 같겠느냐?

 

그대가 이와 같은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모름지기 옛 사람이 세워 놓은

교화문敎化門에서 알음알이를 자세히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지공誌公이 말했다. '세간을 벗어난 눈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대승大乘의 법약法藥을 잘못 먹을 것이다.'

 

志公云 佛本是自心作 那得向文字中求? 饒你學得三賢四果十地滿心 也只是在凡聖內坐。

不見道 諸行無常 是生滅法。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爭似無為實相門 一超直入

如來地? 為你不是與麼人 須要向古人建化門廣學知解。

志公云 不逢出世明師 枉服大乘法藥。

 

얻을 만한 조그마한 법도 없음이 깨달음이다. ─────────────────

 

그대가 지금 하루 종일 행동하면서 다만 마음 없음을 배우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

면서 반드시 참으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대의 역량이 작아서 단번에 뛰어넘

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3년, 5년 혹은 10년이 지나면 반드시 들어갈 곳을 얻어서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지 못하고 굳이 마음을 가지고 선을 배우고 도를 배우려고

하니, 불법佛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 여래의 말씀

은 모두 사람을 교화敎化하기 위한 것으로서 마치 누런 나뭇잎을 돈이라고 하여

어린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하였으니

법이란 정녕 실다운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종문宗門의 사람이 아니다며 그대의 본분과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서 말했다. '얻을 만한 조그마한 법도 없음을 일컬어 무상정각이

라고 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 뜻을 깨닫는다면, 비로소 불도佛道와 마도魔道

모두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你如今一切時中行住坐臥 但學無心 久久須實得。為你力量小 不能頓超 但得三年五年

或十年 須得個入頭處 自然會去。為汝不能如是 須要將心學禪學道 佛法有甚麼交涉?

故云 如來所說 皆為化人 如將黃葉為金止小兒啼 決定不實。若有實得 非我宗門下客

且與你本體有甚交涉? 故經云 實無法少法可得 名為阿耨菩提。

 若也會得此意 方知佛道魔道俱錯。

 

그대의 법신은 부처 조사의 법신과 같다. ────────────────────

 

본래 깨끗하고 밝지만, 모나거나 둥글거나 크거나 작거나 길거나 짧은 등의 모습

없고, 번뇌도 없고, 애쓸 일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또렷이

드러나 있지만, 한 물건도 없고,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다.

 

온 우주는 바다 속의 물거품이요海中漚, 일체 성현은 번갯불과 같으니, 모든 것은

참마음과 같지 못하다. 그대의 법신法身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부처님과 조사祖師

의 법신과 같으니, 어디 털끝만큼이라도 모자람이 있겠느냐?

 

이미 이러한 뜻을 알았다면, 모름지기 애써 노력하기를 바란다.

금생이 끝나면 날숨이 들숨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本來清淨皎皎地 無方圓 無大小 無長短等相 無漏無為 無迷無悟 了了見 無一物

亦無人 亦無佛 大千沙界海中漚 一切聖賢如電拂 一切不如心眞實。法身從古至今

與佛祖一般 何處欠少一毫毛? 既會如是意 大須努力 盡今生去 出息不保入息

 

 

다만 묵묵히 계합한다 ────────────────────────────

 

육조六祖께선 경전을 알지 못하셨는데, 어떻게 옷을 전해 받고 조사祖師되셨

습니까? 신수神秀는 오백대중 가운데 수좌이고 교수사敎授師로서 삼십이부경론

經論을 강의할 수 있었는데도, 어찌하여 옷을 전해 받지 못했습니까?

 

황벽이 말했다. 신수 상좌에게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니, 수행

하여 깨닫는 것옳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까닭에 오조弘忍께선 육조慧能에게

법을 부촉하셨다.


육조는 당시에 다만 묵묵히 계합하여 여래의 깊은 뜻을 비밀리에 받은 것이다.​

 

問 六祖不會經書 何得傳衣為祖 秀上座是五百人首道座 為教授師 獎得三十二本經論

云何不傳衣?師云 為他有心 是為有法 所修所證 將為是也。所以五祖付六祖

六祖當時只是默契得, 密授如來甚深意。所以付法於他。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키니 자성을 보아 깨닫는다 ─────────────

 

그대는 이런 말을 듣지도 못했느냐?

 

법은 본래 법이지만, 법이랄 것은 없으니 법이랄 것이 없어도 법은 역시 법이다.

이제 법이랄 것이 없는 것을 부촉할 때에 법이니 법이니 하지만 어찌 법이었던

적이 있었겠느냐?

 

​만약 이 뜻을 안다면, 비로소 출가한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고, 바야흐로 잘 수행

하는 것이다. 만약 믿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도명道明 상좌는 대유령 꼭대기까

쫓아가서 육조를 찾았겠느냐?

 

육조가 도명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일을 찾아서 왔소? 옷을 찾아왔소? 법을 찾아왔소?'

 

도명 상좌가 말했다.

'옷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단지 법 때문에 왔을 뿐입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대는 잠시 생각을 거두고서, 좋고 나쁨을 일절 생각하지 마시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생각하지 않은 바로 이 때에, 도명 상좌가 부모에게 아직 나오지 않

았을 때의 모습을父母未生時面目來 나에게 돌려주시오'

 

도명은 그 말을 듣고서 문득 묵묵히 계합하였는데, 곧장 절을 올리고 말했다.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그 차고 따뜻함을 저절로 아는 것과 같군요.

 <如人飲水冷暖自知>

저는 오조五祖의 문하에서 삼십년 동안 있다가, 오늘 비로소 지난의 공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렇습니다如是

 

이러한 때에 이르러서야,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키

자성自性을 보아 깨닫게 되는 것이 언설言說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

았던 것이다.​


汝不見道? '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 若會此意 方名出家兒

方好修行。若不信 云何明上座走來大庾嶺頭尋六祖? 六祖便問'汝來求何事? 為求衣?

 為求法? 明上座云'不為衣來,但為法來。 六祖云 '汝且暫時斂念,善惡都莫思量。


明乃稟語 六祖云'不思善 不思惡正當與麼時 還我明上座父母未生時面目來。

明於言下忽然默契 便禮拜云'如人飲水冷暖自知。某甲在五祖會中 枉用三十年功夫

今日方省前非。'六祖云如是。到此之時 方知祖師西來 直指人心見性成佛 不在言說。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倒却門前刹竿著>────────────

 

"어찌 듣지 못하는가? 아난阿難Ananda이 가섭迦葉 Mahakasyapa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金蘭袈裟를 전한 것 외에 따로 무슨 물건을 전하였습니까?'

하니 가섭존자가 아난아! 하고 부르니 아난이 네!하고 대답하자 가섭이 말했다.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倒却門前刹竿著 하였으니

이것이 곧 조사가 내세우는標榜 것이다.

 

아난이 삼십년 동안 세존을 시봉하여 많이 들은 지혜가

있었으나 부처님께서 꾸람 듣기를

 

네가 천일동안 배운 지혜는, 하루 동안 도를 배우는 것만 못하다.

만약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豈不見? 阿難問迦葉云 世尊傳金襴外 別傳何物? 迦葉召阿難 阿難應諾  迦葉云

倒卻門前刹竿著。此便是祖師之標榜也。甚深阿難三十年為侍者 只為多聞智慧

被佛訶云 汝千日智慧 不如一日學道 若不學道 滴水難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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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무심선원 心禪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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