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34
9-1 삼구(三句) 上堂에 僧問, 如何是第一句오 師云 三要印開朱點窄[側]하고 未容擬議主賓分이로다 問, 如何是第二句오 師云, 妙解豈容無著問이며 漚和爭負截流機리오 問, 如何是第三句오 師云, 看取棚頭弄傀儡하라 抽牽都來裏有人이로다
임제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삼요(三要)의 도장[印]을 찍었으나 붉은 글씨는 그 간격이 좁아서 숨어 있으니, 주객이 나누어지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이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묘해[문수]가 어찌 무착선사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마는 방편 상 어찌 뛰어난 근기[무착]를 저버릴 수 있으랴.”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제삼구입니까?”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무대 위의 꼭두각시 조종하는 것을 잘 보아라.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이 모두 그 속에 사람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강의 ; 이 삼구법문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구구하다. 우선 임제스님이 직접 말씀하신 삼구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하면 구구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일구(第一句)[제일의 소식, 제일의 도리]는, 여기에 삼요라는 도장[제대로 갖춘 진리의 도장. 제법실상의 도장]이 하나 있다. 그 도장을 찍었을 때 아직 찍은 도장이 종이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 붉은 글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주관에 해당되는 도장과 객관에 해당되는 붉은 글씨가 아직 나눠지기 전이다. “주객이 나눠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 뜻이다. 다시 말해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기 이전 소식이다. 음양이전의 태극이나 무극의 경지라고 보면 쉽다. 그러나 무극이나 태극 송에는 이미 음과 양이 잠재되어 있다. 주객이 나눠지기 전에도 주객은 이미 잠재되어 있기는 하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一念不生]의 소식이다. 무생(無生)의 경지다. 마치 도장을 허공에다 찍은 것과 같다 라고도 표현한다. 한 순간도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본래 그대로 여여한 자리다. 부처니, 보살이니, 조사니, 성인이니, 범부니, 중생이니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동화처럼 들리는 경지다. 그래서 제일구의 소식을 알면 부처님과 조사의 스승이 된다고도 했다. 또 조사선(祖師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제이구(第二句)[제이의 소식, 제이의 도리]는, 무착선사가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장안에서 오대산까지 일보 일배(一步一拜)를 하면서 정성을 다해 갔다. 오대산 입구에서 한 거지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이 벽암록 35칙에도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불교에는 거의가 뜻을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가 뜻하는 바를 알면 그뿐이다.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방에서 옵니다.” “남방의 불교는 어떤가?” “말세의 비구들이 계율이나 조금 지키며 삽니다.” “대중들은 얼마나 되는가?” “혹 3백 명, 혹 5백 명씩 모여 삽니다.” 이번에는 무착이 문수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불교가 어떻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느니라.”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니라.” 문수보살이 무착의 그와 같이 답지 못한 질문을 받고 방편으로 일일이 대화를 받아 준 것은 무착선사 같은 그 정성스런 근기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객이 나눠지긴 했으나 그렇게 흔적이 오래 남진 않았다. 제이구의 경지를 “물에다 도장을 찍은 것과 같다.”라고 했다. 찍을 때는 찍히는 것이 있으나 도장을 떼면 흔적이 없다. 허공에다 찍은 것과 비교해보라. 또 제이구의 소식을 알면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된다고 했다. 여래선(如來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제삼구(第三句)[제삼의 소식, 제삼의 도리]는, 꼭두각시나 인형을 움직일 때 잘 보면 모두가 무대 뒤에서 사람이 조종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인형으로 된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는 전혀 없다. 허수아비다. 사상(事相)과 경계와 사항들에 끌려 다니는 삶이다. 불교라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수처작주, 즉 환경이나 대상이나 경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어디서나 주제자로 있으라는 가르침이 절실히 요구되는 경지다. 마치 도장을 진흙에다 찍은 것과 같다. 걸음걸음이 상(相) 투성이요. 흔적 투성이다. 허공에다 도장을 찍은 것과 물에다 찍은 것과 함께 비교해 보라. 제삼구의 뜻은 알아봐야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의리선(義理禪)의 경지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삼구를 경절문(徑截門)과 원돈문(圓頓門)과 염불문에 비교해 보아도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삼구, 이구, 일구의 차원과는 멀리 벗어난 향상일구(向上一句)가 있다. 무엇이 향상일구인가? “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