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①무에서 유는 생기지 않는다|****@불교와자연과학@

2020. 1. 5. 11:38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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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에서 유는 생기지 않는다

 

제로는 아무리 많이 모아도 제로(0)인 것은 공리(公理)로서, 이것은 당연하여 의심할 바가 없다. 

우리들의 이 육체도, 지금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생명이나 마음도, 이것들은 분명히 실존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육체가 있음으로 해서 그 마음으로 인지되는 주위의 만물만상의 존재도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그것들을 관찰하고 실험하여 그 사이에 있는 법칙을 알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의 행위인 자연과학도 있을 수 없다. 

오늘의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의 사고체계(思考體系)가 있다. 그러나 불교라고 말하는 한, 그 속에 근본도리가 일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불교의 경전도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차이에 따라 동일한 사리(事理)도 상이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문자에 얽매일 때는 의미마저 바뀌어 진실을 모르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불교에 관한 서적을 읽는 것만으로는 진실을 알기가 힘들게 되어있다.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근본도리이므로 그것의 해설서인 옛 경전에 구애될 것은 없는 것이다. 

근본도리는 만물을 만들고 만상을 나타내는 근원을 공(空)이라고 말하며, 무(無)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공(空)과 무(無)는 문자도 상이하지만 그 의미도 다르다. 공(空)을 무(無)와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여 허무(虛無)로 해석하면 아무 것도 없다. 빈 것이라는 생각으로 씌어진 불교의 책들도 있지만, 이것으로는 이치를 알 수가 없게 된다. 

불교의 한문경전에서 공(空)이라고 하는 글자를 쓰고 있는 말의 근원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梵語)의 수냐(Sunya)로서 그 기원은 부풀어 오르는 것(膨張)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팽창하는 것이므로 속이 텅 비어서 알맹이 없다. 알맹이가 없는 공허(空虛 : all empty 또는 void) 한 것이 공(空)이라고 하는 불교학자가 대부분이다. 수냐를 텅빈 void 로 영역한 것은 독일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동양학자 F. 막스무라박사로서 지금부터 약 9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부풀어 오른다고 해서 공을 빈 것이라든가 공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본래부터 팽창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공(空)이라고 석가세존(釋尊)은 증득(證得)한 것이다. 부푸는 성질을 가진 무엇인가(thing)가 있다. 이 무엇(thing)이 있어서 만물만상(things)이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이 무엇인 공(空)은 유(有)이지 무(無)는 아니다. 무(無)에서 유(有)는 생기지 아니한다. 제로(零)가 아닌 무엇인 공(空)을 근원으로 하여, 이 세상의 만물만상이 만들어진다고 근본도리는 기리키고 있다. 

세존(釋尊)이 입멸한지 약 600-700년 뒤에 남 인도의 용수(龍樹)라는 사람이 쓴 『중론』(中論)이라는 책 속에 

「以有空義故 一切法得成 若無空義者 一切則不成」

이라는 글귀가 있다. 공의(空義)란 공(空)한 것이라는 의미이며, 일체법(一切法)은 제법(諸法)과 같아 만물만상이란 뜻이다. 따라서 『중론』의글귀는 「공(空)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만물만상이 성립되고, 만일 공이라는 것이 없다면 일체의 사물은 성립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된다. 

무(無)가 아닌 공(空)에서 만유(萬有)라고도 일컬어지는 만물만상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공(空)은 제로(零)일 수는 없으며, 만물만상의 근원이 되고, 만물만상의 실체이기도 하며, 정체(正體)이기도 하다. 한역(漢譯)의 불교경전에는 진여(眞如)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진여는 진실여상(眞實如常)의 우주 실체라고 말하나 진여는 공(空)의 어원인 Sunya를 한자로 표음화(表音化)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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