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空)이라는 만물만상의 근원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생긴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도 아니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언제까지나 늘 존재하는 상주불멸(常住不滅)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세상 온갖 사물이 변천한다는 근본도리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원인 공(空)은 만들어진 사물 가운데의 하나가 아니고, 사물을 만들어내는 근원인 것이다. 공(空)에 근원이 있다면 공을 근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만들어진 것은 모두가 변화해 가는 루파(rupa)인 색(色)이지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변화해 가는 색을 만들어 내는 공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공(空)이라는 근원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만물만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일 공이 없었다면 만물만상도 없으며, 만물의 하나인 우리들의 육체도 만상의 하나인 생명이나 마음도 있을 수 없고 만물만상의 근원 따위를 운운할 사람도 없다.
공(空)이 왜 있었는가는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논한다는 것조차 헛된 일이고 실없는 희론(戱論)이라고 석존께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인간세상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공(空)이라는 근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공 그 자체의 활동의 표현이다. 우리들이 인간세상에서의 고뇌를 끊고 마음의 평안을 갖고 밝고 풍족한 즐거운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를 위한 지혜 따위도 공(空)이 있고 근본도리가 있음으로서의 나타남이다.
근본도리에 의지하여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구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불교에서는 부처나 보살(菩薩)의 자비심 또는 대비(大悲)라고 하며, 그를 위하여 사물의 선악정사(善惡正邪)를 판단하는 마음의 활동을 부처나 보살의 때지(大智)라 일컫는다.
부처님이라 함은 근본도리를 발견한 인도 석가족(釋迦族)의 싯달타 고타마를 후세 사람들이 우러러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석존 이전부터 부처란 생명의 근원을 알고 그것과 일체가 된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석가족의 존경받는 사람 석존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한 공(空)이야말로 우리들의 생명까지도 나타내는 근본의 힘이다. 이 힘을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본원력도 공이라는 것이다.
공(空)이야말로 만물만상의 근원이며, 이 세상의 만물만상은 공 그 자체가 만들어 낸 만파(卍巴)의 소용돌이에 의한 얼룩이다. 근원인 공이 근본도리에 의하여 만들어 내는 만물만상 그 자체는 정사(正邪)가 없는 모습이며, 공9空)과 일체이다. 부처의 깨달음(悟)의 경지란 바로 이것이며, 우주와 일체인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이라고 불교, 특히 자력법문(自力法門)의 선종(禪宗)에서 말하고 있으나, 공(空)을 만물만상(色)의 근원이라고 지각하게 되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