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간병기/박상원 베이비네임스

2010. 4. 26. 18:4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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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한달(2월7일~3월11일)이 
소소한 기록으로 남았다. 평생 '무소유'의 정신을 설파하고 실천한 스님은 삶의 끝자락에서 작은 욕심을 냈다.

물미역(생미역)과 당근주스, 그리고 단팥죽. 스님을 걱정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밥 챙겨먹으라"고 걱정했다. 한국일보는 스님이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입적할 때까지 수발한 박상원(37) 베이비네임스 대표의 간병일기를 입수해 싣는다.

박 대표는 5년 전 법정 스님과 우연히 연을 맺고 따랐다. 일기엔 병마와 싸우는 스님의 의연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담겼다. 슬퍼하는 좌중을 웃기기도 하고, 일상의 편린 속에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편집자주

#2월7일-물미역


스님께서 물미역(생미역)이 먹고 싶다 하셨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천지간이 눈이었다. 주문진 시장을 샅샅이 뒤졌건만 자연산 생미역은 없었다. 폭설로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생미역 3단을 구했다. 
 밤 8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하니 스님은 저녁공양을 하고 있었다. 
 자연산이 아니라 하셨다. 입맛이 없으셨는지 곧 누우셨다. 
 밤이 깊도록 발을 주물러 드렸다. 얼굴은 평안하고 숨소리도 고르셨다.

#2월15일-뱃속에 꽃폈다

설을 쇠고 스님을 뵈러 상경하는 길, 차 뒷좌석 매화가지 한아름이 4년 전 그날로 인도했다. 스님이 섬진강으로 오라 했다. 정갈하고 소박한 방에서 스님은 매화를 띄워 차를 우려주셨다. 깊고 맑은 향기에 온 정신이 취해 그만 꽃마저 마셔버렸다. 스님이 "뱃속에 꽃폈다"고 웃었다. 한참을 따라 웃었다.

생사가 여일한 모습으로 바위와 바람과 별과 이야기하시고 눈길을 나누시던 스님의 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이 오직 순수한 생명 그 자체일 수 있도록 스님은 바라보고 대화하고 사랑하셨다.

병원의 공기는 탁했다. 서울이라는 곳은 숨막히는 듯한 시간과 사람과 일들이 오갔다. 스님의 창가에 매화 화병을 작게 만들었다. 아주 작은 딱 한가지로. 좋았다. 아직 피지 않은 매화 봉우리가 더 보기 좋았다.

스님은 의식이 없으셨다. 다리를 주무르니 깨셨다. "아버님은 잘 뵙고 왔냐?" "차례 잘 지냈냐?" 겨우 두 마디에 힘이 들어 눈을 감으셨다. 눈물이 났다. 스님의 발에 얼굴을 비비고 한참 스님의 숨결을 느꼈다. 저 숨결을 언제까지 붙들 수 있으려나.

늘 밥 먹었느냐, 밥부터 챙기시던 스님은 웃는 모습이 없으셨지만 늘 마음 깊이 사람을,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시는 힘이 있었다. 이제 침상에서 내려 올 수도 없고, 대변을 스스로 가눌 수도 없다. 삶이란 죽음이란 그리고 늙음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토록 "자연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셨던 스님의 마지막 설법은 대자연의 경이 그 자체로 남아 있었으면 했다. 스님의 마지막 숨결이 병원이 아니라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이었으면 좋으련만.

#2월25일-관음보살

아침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급하고 깊은 음성은 울고 있었다. 나도 꺼이꺼이 울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스님은 의식을 잃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관음보살을 끝없이 외었다. 스님은 눈을 조심씩 뜨시고 다시 감고를 계속 했다. 시간은 지리하고,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2월27일-집으로 가자

스님이 다시 기운을 차렸다. 휠체어를 타셨다. 휠체어를 밀어 드렸다. 너무 느린지 '빨리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평소에도 내가 운전을 하면 빨리빨리 가라고 호통치곤 하셨는데…. 한참을 운동하시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제 정말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인지 모른다.

#3월3일-나 퇴원하면 와

강원도를 다녀오는 길에 주문진에서 생미역을 다시 구해왔다. 여리고 가는 것으로. 병실 안 스님은 기력이 없었다. 두 손으로 미역을 오래 만지셨다. 눈물이 났다. 몸이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몸이 불편하니까 누워있지"라고 호통이다. 모두가 깔깔 웃었다. 내일 뵙자 했더니 손을 가로저으며 "나 퇴원하면 와" 하신다. 슬픔과 기쁨이 뒤섞였다.

#3월7, 9일-기저귀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셨다. 화도 말씀도 늘었다. "어차피 먹을 건 먹어야지" "내 몸에 사망신고 낼 테니 (치료) 그만해" "내 몸에서 거대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홍라희 여사(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부인)가 오자 기분이 좋아지셨다.

기저귀를 갈아내고 있다. 진물이 많이 나서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이 힘들어 하신다. 당근 주스를 좋아하고 자꾸 단것을 찾는다. 밤에 보살들이 애기 부처님께 팬티를 입혔다. 늦도록 깔깔 웃었다.

스님은 기저귀를 채우는 게 싫다고 했다. 그냥 채웠다. 습기가 높아지자 스님이 힘들어했다. 생사를 오가며 우리는 서있다.
#3월10일 오후 10시-이제 이 공간과 시간을 떠나야겠다

스님은 얼굴이 밝았다. 합장을 하자 "저녁공양, 저녁공양" 하셨다. 보자마자 밥 먹으라 하셨다. 스님도 저녁공양 한 그릇을 드셨다.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의 단팥죽을 먹고 싶다 했다. 길상사 덕현 스님이 저녁 늦게 들고 왔다. 단팥죽을 맛있게 드셨다. 자꾸 저리다고 주물러 달라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고통도 깊어졌다. 산소수치가 90이하로 계속 떨어졌다. 급하게 간호사를 불러 목에 걸린 가래를 꺼내려 했더니 스님은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계속 뒤척이셨다. 자꾸 무어라 말씀하셨다. 산소 마스크를 떼고 여리고 힘에 겨운 소리에 귀를 댔다. 가래에 얽힌 목소리는 깊은 수렁에 빠진 발목처럼 힘겹고 힘겹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이 공간과 시간을 떠나야겠다."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아파, 아파…" 하시는 스님의 고통만큼 밤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었다. 12시간 고통의 터널을 지나 스님은 당신의 길을 떠나셨다.

마지막 공간과 시간을 남겨두고 스님이 처음 온 그곳으로 떠나셨다. 당신은 온전한 공간이고 완벽한 시간이셨다.

우주의 어느 끝자락에서 영멸의 시간 어느 끝자락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리라. 그 날 만나면 매화가 향기롭게 피리라. 맑은 바람 속에 향기로운 햇살 속에 당신을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